[And 책과 길] 이 문장의 주인은?… ‘현금자판기’가 된 저작권

입력 2024-11-22 04:51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12월, 소니 뮤직은 가수 겸 작곡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매입가는 5억5000만 달러(약 7600억원)에 이른다. 엄청난 금액으로 한 가수의 창작물이 팔리고 있는 이유는 ‘저작권’ 때문이다. 한 가수는 일시에 거금을 손에 쥐었고, 소니 뮤직은 아마도 더 많은 금액을 일반인들에게 회수할 것이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창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말한다. 일반인에게 저작권은 스프링스틴 같은 가수의 음악과 함께 소설, 영화, 그림, 무용, 심지어 비디오 게임과 컴퓨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근현대 창작물을 유료로 또는 엄격한 제약 속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마다 우리는 ‘교묘하게 숨겨진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지식 재산 전문 변호사와 비교문학 전공 교수인 두 저자는 “저작자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비교적 단순한 아이디어가, 기묘하고도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다양한 활동을 틀에 가두고 제약하며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게 된 사연”을 책에 담았다.

사실 저작권 개념이 생긴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 문학과 철학 저작물은 소유권 개념이 없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은 앞선 세대의 유산을 모방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옛 유대 속담으로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나의 전통으로 내려왔다. 셰익스피어도 선배 작가들의 이야기와 인물을 빌려 왔고, 그가 사용한 소네트 형식도 몇 세기 전 이탈리아 시인들에게서 가져왔다. 창작물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공유재산이었다.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 인쇄술을 창안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1450년부터 1500년까지 반세기 동안 유럽 각국에서는 2000만 권에 달하는 인쇄본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개별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쇄업자가 가져갔다. 이들은 서적의 출판과 판매를 독점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은 당시 영국에서 인쇄업계를 좌우하던 톤슨가의 소유였다. 서서히 저항이 생겼다. 소유와 책임 문제가 발생했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다니엘 디포는 1703년 풍자적 소책자 ‘비국교도를 간편히 처치하는 법’을 발표한 뒤 ‘선동적 명예훼손’을 저지른 죄로 처벌을 받았다. 책자의 소유권은 인쇄업자에게 있었지만 책임은 저자가 진 것이다. 디포는 “책은 저자의 발명품이요, 저자의 뇌가 낳은 자식”이라는 말과 함께 소유자가 권리와 책임 모두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1710년 현대적 의미의 최초 저작법인 ‘앤 여왕 법’이 탄생한다. 인쇄업자들은 작가들을 달래기 위해 일정 기간(28년) 작품의 수익권을 넘겨줬다. 그래도 작가로부터 그 권리를 사들이면 그 후로 영원히 그 권리를 소유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처음 인쇄물에서 시작된 저작권의 개념이 같은 인쇄물인 판화와 포스터를 시작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이력과 저작권 보호 기간이 늘어나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다. 그러면서 저작권이 갖는 허상을 짚어낸다.

앤 여왕 법에서 시작된 ‘학문의 장려를 도모하기 위한다’는 목적은 미국 등의 저작권법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저작권법의 ‘창작 장려 효과’는 미미한 결과를 낼 뿐이고 ‘눈속임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18세기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은 “돈이 아닌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은 돌대가리뿐”이라고 했지만 반박할 수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십 만권의 책이 출간되지만 거의 모든 저자는 한 푼도 못 받거나 미미한 액수의 돈만 받는다. 그래도 그들은 책을 쓴다. 저작자의 권리가 사후 90년까지 늘어나면서 뜻하지 않은 변수도 생겼다. 지난 세기에 발표된 책이나 영화, 노래 등의 90%는 저작자를 찾을 수 없는 ‘고아 저작물’로 변했다. 저작권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창작자들은 과거 저작물들의 2차 사용을 피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저작자의 범주에 ‘고용주’가 포함된 것이었다. 고용주는 다름 아닌 법인이다. 상업성을 가진 저작권 대부분이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업계의 대기업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은 미국에 있는 기업들이다. 저자들은 “21세 불평등을 부추기는 주된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지식 재산 라이선스 계약금의 4분의 1 이상은 세계 인구의 4.2%가 사는 미국으로 흘러들고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순익은 연간 800억 달러(약 111조 4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2020년 지식 재산으로 불과 225달러(약 31만원)를 벌었다. 저자들은 “작고 가난한 나라들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고 인터넷상의 과학 논문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상당량의 자원을 세계 최고의 부국에 바치고 있는 현 상황은 누가 봐도 불평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존하는 창작가에게 지원해 준다는 저작권은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전 세계 일반 대중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저작권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현금자판기가 됐는지 알 수 있다
·창작물도 공유 재산이라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일목요연하지는 않아서 그만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