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재곤 (9) 풍족에 취해 비틀거리다 아내 충고에 정신 차려

입력 2024-11-22 03:04
김재곤 가마치통닭 대표가 아내, 세 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학생 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고아가 됐다. 그때 우연히 만난 게 닭이었다. 어린 나이에 살아있는 닭을 잡고 손질해 거래처에 배달하고 수금하는 혹독한 인생 경험을 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돌고 돌아 또다시 닭이었다. 그리고 그 닭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늘 잘 될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서울 은평구에 보람유통 간판을 걸고 5년 남짓 지나자 나는 서울에서도 잘 알려진 ‘대상’이 됐다. 하루에 1만5000마리를 유통했다. 이 물량은 닭을 유통하는 개인사업자로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사이 세 명의 딸도 태어났다. 행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보람이 컸던 시절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늘 비어있던 지갑이 가득 찼다는 점이다. 갑자기 돈이 생기니 주변의 허다한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술담배를 시작했고 노름에도 손을 댔다. 돈을 따거나 잃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갑자기 맛본 풍족함에 그만 취해버리고 말았다.

늘 자리를 지킨 건 아내였다. 어느 날 아내가 정색하고 따졌다. “당신 이렇게 살다가 어쩌려고 그래요. 다시 아무것도 없던 때로 돌아가려고 그래요? 주일 성수 하겠다고 납품 날짜까지 조정하더니 왜 교회에 소홀한 거예요?”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길을 잃은 내가 벼랑 아래로 미끄러지기 직전 붙잡은 건 아내였다. 아내는 잘못만 지적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집에서 가까운 기도원을 소개해줬다. 기도하고 정신 차리라는 당부였다. 나는 이 끈을 놓치면 정말 나를 잃을 것만 같아 순종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불광동 임마누엘기도원이었다. 이곳에서 나의 죄를 만났다. 보름간 기도 생활로 삶이 변하는 기적과도 같은 경험을 했다. 믿음이 약했던 나는 이곳에서 신앙이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죄에서 벗어났다.

그 시절 또 다른 기적을 체험했다. 첫째 딸 한나는 1986년 태어난 우리 집 첫 보물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생후 6개월쯤 심한 뇌전증 증세를 보였다. 병원에서는 뇌성마비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장애 판정도 그랬지만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나는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록 우리 곁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때였다. 바로 임마누엘기도원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한나가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는가 싶더니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힘겹지만 걷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나는 지금까지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둘째 딸 우리는 고려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보스턴에 있는 한 일본계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다. 막내 청아는 내 사업을 도우며 사업을 배우고 있다. 위기에 빠진 나를 신앙으로 구해낸 아내에게 늘 감사할 뿐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