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극복한 자활은 영성·관계 회복까지 도달해야”

입력 2024-11-21 03:01
신용원 인천 참사랑병원 원목이 지난 12일 진행된 마약 중독자 집단 상담에서 진정한 ‘마약 회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질병코드 F19.2.’ 여러 가지 약물을 경험한 ‘멀티 유저’ 중독자가 늘면서 마약 중독자를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질병코드다. 현재 국내에 폐쇄 병동을 운영하며 마약류 중독자 치료를 하는 곳은 인천 참사랑병원과 경남 국립 부곡병원뿐이다. 참사랑병원에서는 매주 한 차례 특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지난 12일 참사랑병원 1층 복도를 따라 가장 안쪽 공간으로 들어서자 햄버거와 음료가 놓인 기다란 테이블 양쪽으로 15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테이블 끝에 앉은 백발의 남성이 오늘 처음 왔다는 청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 종목이 뭐였어?” “필로폰이요.” “마약은 마귀가 준 약이어서 마약이라고 해.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가 안 되지.”

이 병원의 원목 신용원(59·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교회) 목사였다. 화요일 오후면 이곳에서 예배와 함께 집단 상담을 진행한다. 10대부터 40대까지 참가자들은 나이와 성별, 살던 곳이나 중독에 빠지게 한 마약의 종류도 달랐지만 신 목사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신 목사 또한 중독자였다. 17세 때 처음 마약에 손을 대 서른이 넘도록 중독자로 살았다. 이후 27년을 마약 중독자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상담은 90분 넘게 이어졌다. 회복을 위한 마음가짐을 전하는 신 목사의 발언은 단호했다. “단약을 유지한다고 회복 되는 게 아니야. 중독자는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고 그 관계가 회복돼야 회복자가 될 수 있어. 중독자라고 무위도식해도 된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야 해.”

그는 상담 시간이 끝나고도 자리에 남은 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지난 6월부터 폐쇄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김현복(가명·26)씨는 “처음엔 ‘기독교 꼰대’가 무슨 상담을 하나 싶었는데 거친 말투와 표정 속에 내가 회복하길 간절히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어 예배까지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살면서 처음 만난 어른 같은 어른”이라며 웃었다.

병원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인천 남동구엔 신 목사가 1997년 문을 연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사무실이 있다. 마약류 중독 회복자 70여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중학생 때 마약에 빠져 30년을 중독자로 살았던 남철우(48)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대마초 필로폰 러미널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였다. 수도 없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고 했다.

남씨는 교도소에 마약 중독 교육을 하러 왔던 신 목사를 만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그는 “나 같은 놈한테도 하나님이 예비해 둔 계획이 있다는 게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마약을 끊게 됐다. 신앙의 힘으로 가능했다”며 “그 후로 아내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씨는 3년째 식판 납품 업체에서 일하며 신 목사와 함께 마약 중독자들의 멘토가 돼주고 있다.

신 목사는 “재활이 신체적 회복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면 자활은 영적인 문제와 관계 회복까지 도달해야 한다”며 “누군가는 ‘종교적 편향’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27년간 중독자와 살아오며 임상한 분명한 결괏값”이라고 말했다.

마약 사범의 연령대가 지속해서 낮아지는 만큼 조기 예방 교육과 중독 초기 치료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마약 중독자 가족과 매주 소그룹 모임을 진행하는 이선민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 이사장은 “저출산 극복 문제보다 시급한 게 청년들의 마약 중독 문제”라며 “청년들이 스스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마약을 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처벌이 무서워 초기 치료 시기를 놓친 채 숨어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글·사진 최기영 임보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