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음의 아브라함과 순종의 이삭

입력 2024-11-21 03:06

성서는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그분께 인도해 줍니다. 또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등불이기도 합니다. 성서를 읽을 때는 내 삶의 자리에서 읽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매일 꾸준히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종종 같은 본문으로도 다르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본문일수록 더 깊이 묵상하며 읽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성서를 읽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다양한 교훈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아브라함의 숭고한 믿음에 비해 작고 연약한 내 믿음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오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게 무엇일까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건 우선 하나님께선 이삭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 손수 제물을 준비하는 장면에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깊은 고뇌와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도저히 인간으로는 채울 수 없는 신의 명령 앞에 고뇌하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8~10절)

이 한계를 뛰어넘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완성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내 노력과 의지로는 완성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을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 곧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고뇌와 슬픔을 함께 느끼며 자신을 내어주는 이삭의 순종도 눈에 들어옵니다. 늙은 아버지를 힘으로 이길 수 있지만 사랑으로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으로 우리가 모두 따라야 할 모습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할 수 없는 일, 곧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은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할 수 없는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자주 반복했던 말씀처럼 그 순간 아브라함과 이삭은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했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줄 수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이야말로 우리가 모두 가야 할 길입니다. 사랑하는 일, 그 외에 이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 먼저 사랑해준 예수님을 따라 오늘 하루도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 나가길 소망합니다.

김문영 사제(대한성공회 부천교회)

◇대한성공회 부천교회는 40여 년 전에 시작한 전례와 영성이 살아있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증인이 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