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트럼프가 사법리스크를 넘은 방법

입력 2024-11-21 00:3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어떻게 그 무수한 사법리스크를 피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가 불륜 관계에 대한 폭로를 막기 위해 돈을 줬다는 ‘성추문 입막음 사건’(허시 머니)은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평결까지 받은 상태였다. 2021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난동 사건은 미국인 모두가 지켜본 일이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대선 결과 불복과 의사당 난동 사주는 반란에 해당하며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트럼프가 특검에 의해 기소된 것도 3건이나 된다. 그렇게 범죄 혐의가 수두룩한 사람에게 미국인들은 왜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을까.

대선 전날인 지난 4일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성추문 입막음 사건에 대한 형량 선고가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감옥 아니면 백악관”이라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월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의 배심원단은 트럼프가 과거에 성인영화 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그걸 입막음하기 위해 회삿돈 약 13만 달러를 장부를 조작해 만들어줬다는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평결했다. 판사의 형량 선고만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법원의 판사가 재판을 계속 연기하면서 대선 전까지 선고를 하지 않았다. 만약 진보 성향의 판사였다면 징역형을 선고했을 수도 있었다. 트럼프는 이 사건 외에도 기밀문서 유출, 조지아주 개표 개입, 의사당 난동 사주 등 3건으로 형사 기소된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트럼프 변호인단은 재판 지연 전략을 썼고,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기소를 바이든 정부의 정적 제거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에 대해 폭넓은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트럼프의 사법리스크는 획기적 돌파구를 찾게 된다. 트럼프 측은 기소된 사건이 모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어난 일이라며 면책 범위에 속한다는 주장으로 대응했다.

의사당 난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징역형을 받았다. 최근에도 당시 의사당을 방어하던 경찰관들을 공격한 41세의 전직 군인에게 4년3개월 징역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감옥을 피해 백악관으로 들어가게 됐다. 트럼프의 모든 범죄 혐의는 어떤 사법적 심판도 받지 않은 채 대선 승리와 함께 면죄부를 받게 됐다. 현직 대통령은 기소하지 않는다는 법무부 관례에 따라 트럼프에 대한 특검의 기소는 최소한 대통령 재임 기간엔 재판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대선 승자 예측 전문가로도 유명한 아메리칸대학의 역사학 교수 앨런 리히트먼은 대선 직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60년 지기인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을 비판했다. 리히트먼은 “우리 모두는 (2021년) 1월 6일에 트럼프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면서 갈런드가 장관 취임과 동시에 트럼프를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트럼프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있거나 보호관찰 중이었을 것이며, 전체 정치 시스템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갈런드 법무장관은 2022년 11월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사흘 후에야 잭 스미스 전 검사를 트럼프 의혹 조사를 위한 연방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을 대선 전에 감옥으로 보냈다면 미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엄청난 규모의 폭동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서 투표라는 국민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은 왜 그렇게 다른지, 사법적 심판과 국민적 심판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김남중 국제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