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회원국 모시기… 뭉쳐야 산다

입력 2024-11-23 00:02
게티이미지뱅크

“브릭스(BRICS)와 주요 7개국(G7)의 격차는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이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가까운 미래에 세계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브릭스를 중심으로 발생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세계 GDP 점유율에서 브릭스가 37.4%, G7이 29.3%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서방국 통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수치다. 다만 브릭스가 GDP 규모에서 이미 G7을 추월해 격차를 벌려가는 추세는 서방국 경제 지표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해 보호무역·고립주의 정책을 강화하면 브릭스의 팽창과 G7의 위축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6년 전 G7 추월한 브릭스

브릭스는 2006년 유엔총회에 참석한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태동했고, 2009년 이들 4개국의 첫 정상회의를 통해 공식 출범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2010년 합류하면서 초기 정회원 5개국의 영문 국호 앞 글자를 이어붙인 ‘브릭스’라는 지금의 이름을 완성했다.

브릭스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그보다 앞선 2001년이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급성장하는 신흥국으로 소개하면서 브릭스를 처음 썼다. 이때 브릭스의 마지막 글자 ‘S’는 복수형 단어의 끝에 붙는 소문자(s)였지만, 지금은 남아공을 나타내는 대문자로 표기된다.

독일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가 최근 24년간 IMF 자료를 분석한 구매력 평가(PPP) 기준 세계 GDP 점유율 도표를 보면 브릭스의 비중은 2000년만 해도 21.37%로 G7(43.28%)의 절반에 못 미쳤다. 하지만 막대한 자원과 인구를 앞세워 고속 성장을 거듭해 2018년에 점유율을 32.33%로 늘리며 G7(31.84%)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브릭스의 올해 점유율은 35.43%로 G7(29.64%)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브릭스는 반서방 기조를 표방하지 않지만 G7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다자기구로 떠올랐다. 특히 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들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브릭스는 올해 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아랍에미리트(UAE)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여 9개국 체제로 확대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르헨티나도 정회원 자격에 도전했지만 지금은 가입 신청을 보류한 상태다.

타스통신은 브릭스가 향후 사우디·아르헨티나의 합류로 11개국 체제로 확대되면 세계 인구의 45.0%, GDP의 37.3%, 영토의 36.0%, 석유 매장량의 44.4%, 쌀 수확량의 54.7%, 밀 수확량의 48.7%를 차지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회원국들이 외부 의존도를 줄여가며 성장해 경제 주권을 획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푸틴 고립 실패한 G7, 회원국 늘릴까

올해 브릭스 의장국인 러시아는 지난달 22~24일 카잔에서 제16차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에서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포옹하자 제3국에서 브릭스 합류 의사가 쏟아졌다. 싱가포르 CNA방송은 17일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이 브릭스 파트너국으로 승인됐다”며 “이들 국가는 당장 정회원 지위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재집권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향후 브릭스 가입 의사를 밝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올해 대선에서 승리한 반미 국가 수장들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푸틴의 초청을 받고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서방국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을 차단하고 경제 제재를 강화하며 고립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인 리처드 블랙 전 상원의원은 타스통신에 “푸틴은 시진핑과 모디를 카잔에 불러모았다”며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목격된 것처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고립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집권 2기를 맞는 트럼프가 방위비 문제나 관세 장벽을 놓고 동맹국들과 충돌하게 되면 G7의 리더십은 더욱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가 1기 때처럼 G7에 한국·호주·인도를 더한 G10 방안을 제시하는 등 회원국 확대를 재추진할 경우엔 G7도 위축되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할 동력을 얻게 된다.

G7이 회원국 확대에 나설 경우 인도가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약 14억5000만명)인 인도는 그동안 어느 세력에도 밀착하지 않는 등거리 외교 전략을 펼쳐 왔다. 맹현철 서울대 남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인도가 여전히 러시아에서 값싼 원유를 사들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과는 반목하면서도 자국의 제조업 육성을 위해 완제품 전 단계 부품을 수입하며 오히려 교역량을 늘린 것으로 관측된다”며 “인도는 G7에서 합류 요청을 받아도 결국 실리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