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부산 유엔 플라스틱 국제회의를 앞두고

입력 2024-11-21 00:33

오염의 법적 책임 여부 결정할
파리 이후 최대 규모 환경회의

정작 주최국인 우리나라는
1인당 사용량 세계 최고 수준

당장은 대규모 감축 어려워도
재활용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플라스틱의 편리함과 오염이 그렇다. 미세플라스틱이 혈액과 생수병 속에서 발견됐다는 뉴스는 섬찟하다. 위해성과는 별개로 왜 이런 물질이 혈액과 생수병에서 발견되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만 생산폐기 과정에서 자연을 오염시키고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의 혈액 속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플라스틱은 석유화학 주요 제품 중 하나다. 가구와 의자, TV나 노트북 등 전자제품, 자동차, 의료용품, 일회용 생수병, 포장재 등 플라스틱의 쓰임과 활용은 다양하다. 플라스틱은 현대 물질문명의 핵심 재료로 자리잡았다. 석유화학 제품을 대표하는 플라스틱과 함께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세계 5위 규모를 자랑하며, 연 매출액이 100조원을 넘는다. 울산, 전남 여천, 충남 대산을 중심으로 발전한 석유화학 단지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축이다.

이달 말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로 알려진,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법적 구속력을 결정하는 유엔 국제회의가 부산에서 열린다. 파리기후회의 이후 최대 규모 환경 회의다.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다. 이외에도 독성 우려 폴리머와 첨가제, 그리고 불요불급한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 규제 방안을 포함한다.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과 플라스틱 감축은 부작용이 더 크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글로벌 플라스틱 사용량은 1950년에 연간 150t에서 시작해 현재 약 4억t에 달하고 2050년까지 3배 더 증가할 전망이다. 매년 약 700만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해양으로 유입된다. 거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섬과 플라스틱 폐기물로 죽어가는 고래, 새들의 모습은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2050년이면 플라스틱 양이 바닷속 물고기 양을 능가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또한 점증하는 플라스틱 사용에서 오는 온실가스 배출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에서 분노와 함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와 K분리수거도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 앞에서 빛이 바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에 어떻게 임해야 할까. 회의 주최국인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환경부 장관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 합의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기자회견은 우리 정부 입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플라스틱 프리’ 사회는 구호로서 강렬하지만 단기간 내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사용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플라스틱 사용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일회성 플라스틱은 적극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다른 한편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과잉 생산과 중동의 석유화학산업 약진 등은 과거와 같이 저가 플라스틱 제품 대량 생산이라는 석유화학 발전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지만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2010년도 석유화학 대호황기에 변화의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치적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기후 위기를 불신하며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재추진한다면 화석연료 기반 석유화학산업에 의존하는 미국이 글로벌 플라스틱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플라스틱 생산국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명, 경제력 세계 10위권 국가로서 세계 발전을 주도하기는 어렵지만 국제사회의 흐름에 협조하며 국익을 지키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제적으로 맞지 않는 재활용 기준을 고치고 플라스틱의 생산, 소비, 폐기 전 과정을 관리하는 순환경제를 위한 꼼꼼한 통계 구축과 기술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 외에도 합성섬유, 타이어 고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화학물질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다. 탄소중립 전환을 준비하는 석유화학산업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내 관련 산업을 지원하며 녹색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제용(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