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법학자에게 평생의 과제는 정의 탐구다. 기독법률가인 내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 법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규명하는 일이 관심사였다. 이를 가장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길은 법원에 제기된 소송에서 내린 판결례(判決例)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중앙대 대학원과 로스쿨에 ‘문화종교와 법’이라는 과목을 개설한 뒤 종교 관련 판결례와 학술논문을 수집, 분석하고 강의했다. 틈틈이 신학 공부도 병행했다.
그런데 2010년 말 뜻하지 않게 대학 구조조정이 시행됐다. 인문사회 부분을 총괄하는 부총장직을 맡게 되면서 연구에선 손을 떼게 됐다.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나 학과 통폐합의 대상이 된 교수와 학생 동창들까지 거세게 저항하면서 개혁은 좌초됐고 난 불명예 퇴진했다. 설상가상으로 운동 중 무릎을 다쳐 반년 동안 외출도 어려운 신세가 됐다.
이 과정이 무능한 품꾼을 마지막 11시에 부르신 포도원 주인의 음성이라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실패로 얻게 된 시간이었지만 이제껏 해온 강의와 연구 내용을 책으로 낼 수 있었다. 1년 반 동안 매달린 결과 2013년 2월, 한국의 3대 종교 관련 분쟁을 비교·분석한 ‘종교분쟁사례연구’를 출간했다. 11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후일 ‘한국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법’로 발전됐다.
책을 본 젊은 목회자들과 법률가들의 제안으로 ㈔한국교회법학회가 설립됐다. 학회는 2018년 종교인 과세를 준비하는 일을 비롯해 교회 화평의 디딤돌이 될 표준정관 제정, 코로나 사태와 예배의 자유, 차별금지법 등 한국교회에 필요한 법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2022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로 승격된 ‘교회와 법’은 매년 2회 정기적으로 발간하면서 교회법 연구와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다.
나는 가장 늦은 시간에 포도원에 온 품꾼이다. 교수 정년을 6개월 앞둔 2014년 9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자 잃은 양떼가 된 대학교회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중앙대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초대총장 임영신 박사가 세운 60년 전통의 대학교회가 있는데 재단이 바뀌고 2014년 교목실이 폐지되는 위기가 닥쳤다.
제11시에 온 품꾼은 자기 능력을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는 자다. 그렇기에 주인의 부르심에 감격하고 한 데나리온으로 받은 품삯이 전적으로 주인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한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축복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한국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대학교회 목사 △중앙대 명예교수 △중앙대 법대학장, 부총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