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74명의 메노나이트 선교사가 1951년부터 경북 경산에서 20년간 품었던 성경 명령은 신명기 14장 29절이었다. 메노나이트는 재세례파 운동 교파의 한 분파로 평화, 세계구호와 구제, 양심의 자유, 제자도를 핵심 정신으로 삼았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는 6·25전쟁 이후 대구지역으로 17만명 가까이 모인 피란민을 구제하기 위해 한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MCC는 물자구제사업, 직업학교, 전쟁미망인 자활훈련 등 계획을 세워 전쟁미망인과 고아를 교육하고 원조했다.
서른한 살의 미국 청년이었던 댈러스 클락 보란(1920~2002) 선교사가 구제와 교육사역의 첫 삽을 들었다. 보란 선교사는 주한 유엔 민간원조사령부(UNCACK)로부터 후원을 받아 지역주민들에게 많은 구호물자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MCC 본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구제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6·25전쟁으로 경산지역의 30만~35만 가구가 파괴됐다. 보란 선교사는 데일 앨런 네블(1916~2005) 선교사와 함께 의료 및 치과 진료소를 세우는가 하면 바느질 염색 인쇄술 등을 교육하는 미망인 학교도 세웠다.
이들과 함께 MCC 한국 개척자로 꼽히는 선교사는 데일 앨버트 위버(1918~2011)와 어니스트 디 레이버(1927~2018) 선교사다. 이들은 ‘메노나이트 직업 중고등학교(MVS)’를 설립해 1976년 폐교하기까지 45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일 경산메노나이트 근대문화유산보존회(이사장 권용근 목사)는 경북 경산 대신대(총장 최대해 목사)에서 ‘경산메노나이트 근대문화 콘퍼런스’를 열어 메노나이트 선교사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경산=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