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도 실력 증명
데뷔 3년차 30홈런-30도루
노력형 천재로 수비도 성장 중
잠재력 있는 모든 이에게
실패할 자유 있어
사회는 기다려줄 여유 가져야
데뷔 3년차 30홈런-30도루
노력형 천재로 수비도 성장 중
잠재력 있는 모든 이에게
실패할 자유 있어
사회는 기다려줄 여유 가져야
지난 14일 쿠바전 2회말 2아웃 만루에서 김도영(KIA 타이거즈)이 맞닥뜨린 투수는 리반 모이넬로(소프트뱅크 호크스). 일본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1위(1.88)로 내년 시즌 일본 프로야구 최고 연봉(90억원)을 계약한 선수다. 그를 상대로 연봉 1억원, 스물한 살의 김도영이 만루홈런을 날렸다. 모이넬로를 보기 위해 대만 현장을 찾은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20여명이 감탄한 건 김도영의 플레이였다. 한 외신 기자는 이날 경기를 ‘김도영 게임’이라 했고, 중계 캐스터는 ‘김도영의 김도영에 의한 김도영을 위한 경기”라고 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경기에서 만루홈런, 2루타, 솔로홈런에 인상적인 2개의 호수비와 위력적인 주루플레이를 다 보여줬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표팀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김도영은 야구 만화 주인공 같은 믿기 힘든 활약으로 세계에 자신의 야구를 증명했다.
프로 데뷔 3년 차인 김도영은 올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을 뛰며 여러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 4월에는 한 달 동안 10홈런-10도루를 기록했는데 43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홈런을 칠 정도의 장타력과 빠른 발을 동시에 갖춘, 호타준족은 쉽게 나오지 않기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김도영은 이 기세를 이어 정규 시즌 30-30을 달성했다. 역대 최연소·최소 경기 달성이다. 한 경기에서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순서대로 만든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도 최소 타석·최연소로 기록했다. 올 시즌 정규리그 MVP도 예약해 놓은 상황이다. 올해 프로야구 1000만 관중 돌파는 이 같은 바람을 일으킨 김도영의 공이 크다. 김도영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 매출은 110억원이 넘었고,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를 줄인 ‘도니살’은 타이거즈 팬들의 최대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수식어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의 ‘성장’이다. 데뷔 초와 비교하면 믿기지 않을 만큼 쑥쑥 성장했기 때문이다. 광주 동성고 유격수 김도영은 2022년 KIA 타이거즈 1차 지명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프로에 입단해서는 시련이 많았다. 프로 무대는 높았고 계속되는 부진에 주전이 아닌 백업 선수로 밀려나기도 했다. 데뷔 2년 차에는 연이은 부상으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했다. 부상 여파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해 병역 문제를 쉽게 해결할 기회를 놓쳤다.
부진과 불운을 털어낸 힘은 연습 또 연습이었다. 타격감이 떨어질 때는 전력분석 코치를 찾아가 타격폼을 바꾸고 발사각(스윙 궤적)을 높였다. 자신이 정한 하루 운동 할당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웠다. 천재 타자라 불리지만 재능 이상의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투수에겐 “던질 곳이 없는 무서운 선수”가 됐다. 단타에 1루부터 홈까지 파고드는 주력까지 갖췄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중한 것도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한 인터뷰에서 “꾸준히 잘하는 건 물론이고 논란 없이 야구를 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밖에서 밥을 먹더라도 항상 주위를 살피고 말을 조심한다”고 했다. 행운을 줍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줍는다.
다만 어이없는 수비 실책이 잦았던 건 약점이다. 수비야말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반복 훈련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선 수비가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이 또한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전설의 야구 선수 이종범은 “도영이에겐 실패할 자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경험을 해야 더 성장할 수 있다. 이제 겨우 스물하나, 성장할 시간이 충분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실패를 성장과 학습의 기회로 여기기보다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한다. 실패는 성장의 중요한 단계이자 자양분이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 단단해진다.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는 김도영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 또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에게도 실패할 자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줄 여유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김도영이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더하며, 실패도 맛보면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성장하길 바란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