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밤머리재, 꼬불꼬불 메이플 로드 따라 붉디붉은 낭만이 흐른다

입력 2024-11-21 04:54
경남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에서 밤머리재로 굽이굽이 휘돌아 올라가는 고갯길 옆 홍단풍이 붉은 선을 그려놓은 듯하다. 오른쪽 위 도로가 고개 정상으로 이어진다.

지리산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자 남한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경남, 전남, 전북에 걸쳐 있다. 반야봉, 노고단, 중봉, 바래봉 등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5m)은 경남의 산청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다.

천왕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등을 거쳐 밤머리재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높이 솟아오른 곳에 ‘곰바위산’인 웅석봉(熊石峯·1099m)이 있다. 산꼭대기 형상이 곰을 닮았다고, 절벽에 곰이 떨어져 죽을 만큼 산세가 험해 이름을 얻었다. 암릉의 급경사와 완만한 육산이 조화를 이뤄 지리산의 장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미니 지리산’으로,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자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조망처다. 지리산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지만 천왕봉 못지않은 조망과 더불어 단풍은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곳이다. 산청읍내에서 보면 산청읍을 감싼 요새처럼 보인다.

웅석봉을 가장 짧게 오를 수 있는 출발지는 밤머리재다. 산청군 금서면과 삼장면을 이어주는 국도 59호선 옛 고갯길인 밤머리재는 가을철 홍단풍으로 치장한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다. 길을 따라 심어진 단풍은 붉은 선으로 이어지는 ‘산청 메이플 로드’다. 하늘이 맑고 구름이 없는 날에는 홍단풍과 새파란 하늘의 대비가 눈이 부실 정도다. 이 지역 단풍은 다른 지방보다 늦게 오는 만큼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 때까지 남아 있어 늦가을 낭만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밤머리재는 ‘구름의 놀이터’라 불릴 만큼 정상부에 올랐을 때의 개방감이 탁월하다. 하지만 고갯길 정상부는 지리산국립공원과 웅석봉군립공원의 마루금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생태축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막혀 있다. 밤머리재 생태터널은 야생 동식물 서식지 단절이나 훼손을 방지하고 동식물 이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포토 전망대, 산책로, 화장실 등을 갖춘 휴식처와 쉼터도 조성된다.

저녁노을 속 웅석봉 왕재 일대를 담은 내리저수지.

제대로 웅석봉 정상을 오르려면 내리저수지에서 선녀탕(폭포)-왕재를 거쳐 오르는 것이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는 내리저수지 주변에는 주황색 가을옷을 입은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다. 잔잔한 수면에는 왕재 등 웅석봉 능선의 가을빛이 그대로 반영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내리마을 웅석봉 주차장 끄트머리에 웅석봉 등산안내도가 있고 왼쪽으로 개울을 건너 웅석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임도를 걸어가면 단풍나무 터널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웅석봉은 산세만큼 계곡도 수려하다. 정상을 중심으로 곰골, 어천계곡, 청계계곡, 닥밭실골 등이 뻗어 내리고 있다. 곰골은 웅석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계곡이다. 많은 폭포와 험한 협곡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에서 놀던 곰이 가파른 북쪽 사면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웅석봉에서 가까운 삼장면 유평리 대원사 계곡도 단풍 구경에 빼놓을 수 없다. 단풍 든 깊고 울창한 수림과 반석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맑은 공기, 싱그러운 숲의 계곡 길은 그 자체로 힐링로드다.

왕산 자락 전 구형왕릉 옆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금서면 화계리 왕산 자락에 위치한 가야국 마지막 10대 임금인 구형(仇衡)왕의 돌무덤인 ‘구형왕릉’ 주변도 가을철 단풍으로 인기다. 이 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한국식 피라미드로, 이끼나 풀이 자라지 않고 낙엽이 능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새들이 이곳에 배설하지 않는 신비함이 있다고 한다. 늦가을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가 능 옆에서 화려함을 자랑한다. 구형왕릉 앞에는 ‘전(傳)’이라는 글자가 붙는다. 구형왕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형왕 재위 기간은 521년부터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이다.

동의보감촌 무릉교 인근 구절초 군락지.

왕산 기슭에는 ‘대한민국 웰니스 관광의 중심지’ 동의보감촌도 있다. 118만㎡의 거대한 규모로 조성돼 약초 테마공원, 한방 테마공원 등 체험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하다. 동의보감촌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허준 순례길’에서는 가을철 예쁜 숲길을 따라 구절초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동의보감촌 꽃밭에는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조형물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여행메모
밤머리재는 공사 중… 지막리에서 왕복
동의보감촌 출렁다리 ‘무릉교’ 야경

웅석봉 밤머리재는 산청군 금서면과 삼장면을 이어주는 옛길이지만 현재 고개 정상부가 공사 중이어서 반대편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홍단풍으로 치장한 도로를 드라이브한다면 금서면 지막리 쪽에서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반대편 삼장면 홍계리는 2022년 개통된 3㎞ 길이의 지리산터널을 지나면 닿는다.

웅석봉 산행 들머리인 내리저수지는 산청읍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산청버스터미널에서 내리행 버스가 1일 2회 운행한다. 내리저수지 주차장~선녀탕~왕재~정상~십자봉~참샘~주차장 코스는 약 9.2㎞에 5시간 15분가량 소요된다.

동의보감촌은 총 231만㎡, 축구장 324개 크기다. 동의전과 약초 테마공원, 한방 테마공원 등을 갖췄다. 2021년 무릉계곡을 가로지르는 총 길이 211m, 보도폭 1.8m, 최고 높이 33m 규모의 출렁다리인 무릉교가 개통됐다.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돼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청 읍내에 식당과 숙소가 많다. 석쇠불고기·오리불고기 등을 파는 식당과 지리산에서 나는 약초를 주로 한 정식을 판매하는 식당 등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산청=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