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무료함 달래는
가출 청소년들… 훈계보다
솔직한 소통으로 답 찾아야
가출 청소년들… 훈계보다
솔직한 소통으로 답 찾아야
우연찮은 기회를 얻어 청소년쉼터와 소년원 등에서 직업체험 강사 일을 시작했다. 몇 년째 계속되는 그 일을 통해 만난 몇몇 청소년들로부터 속칭 ‘가출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출팸이란 가출 패밀리의 줄임말로 가출 청소년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임을 말한다.
쉼터나 소년원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게 된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가출팸 생활은 활동반경의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그들 사이에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는 점이고, 그 규칙이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나름 상식적인 방향을 지향한다는 사실이었다. 가출팸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공동체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주목할 만한 건 비록 가출 동기나 목적, 방향타는 서로 달라도 이른바 생활에서 없어선 안 될 최소한의 규칙만큼은 나름대로 확고한 ‘선’을 지킨다는 거였다.
필자에게 가출팸 이야기를 들려준 쉼터 친구는 꽤 오랜 기간 가출을 경험하고, 여러 가출팸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했다. 가출팸 일원에서부터 팸장(리더)까지 두루 경험한 쉼터 친구 말에 따르면 아무리 별종인 팸장이라도 스스로 수립한 규칙, 다시 말해 ‘자체 내규’는 소소한 항목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다고 했다. 이렇듯 가출팸의 근본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이 이 규칙인데, 그것의 목표는 결국 ‘생존’으로 압축된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여러 사정으로 가출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리 없이 생존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생존의 문제엔 물론 물리적 배고픔도 포함돼 있다. 누구 하나 정기적으로 돈을 벌지 않기에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이 절실한 게 현실이다.
거기에 또 하나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건 모순적이지만 무료함이었다. 치안도, 안전지대도, 누군가의 위로도, 관심도 받지 못하는 거리 한복판에서 억지로 주어진 자유를 견뎌내기 위해 그들이 하는 가장 손쉬운 행동이 바로 지하철, 그중에서도 2호선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임을 하거나 원룸에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의 답은 확고했다. 게임을 하려면 핸드폰 요금을 더 내거나 피시방을 찾아야 하는데 항상 돈이 부족한 상태에선 의욕 자체가 없어진다고 했다. 원룸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도 고역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장기 가출 청소년의 시간 견디기 결정판은 결국 서울지하철 2호선행이었다. 눈치껏 무임승차한 뒤 돌고 또 도는 무한궤도 같은 2호선 순환선을 타고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덜컹거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고, 그렇게 2호선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간을 견딘다고 했다. 필자에게는 이러한 그들의 시간 견딤이 또 하나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보였다.
왜 그러고 사느냐,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다그침 섞인 훈계를 늘어놓는 건 2호선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다.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늘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 불공정의 바탕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향한 폭력, 소위 왕따 문제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다.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것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제도의 수혜자들은 제도권 내에서의 논의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선택과 집중의 프레임 밖, 이른바 소외의 지점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도적으로 많은 보완이 이뤄졌으며, 사회의 관심도 각별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청소년이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선택과 집중의 프레임 밖으로 이탈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도, 답도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란 규칙이 이들을 2호선으로 내몰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솔직한 고민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이다. 그것이 오히려 제도권에 안착한 이들과의 안정적인 공생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되어주지 않을까.
주원규 소설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