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나도 그를 증오했었다
그러나 그가 웅덩이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소리가
나의 애간장을 녹였던 것일까
애당초 구원의 홀이 내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었을까
꿈쟁이 요셉을 살려준 대가로
구원의 홀이 나에게 주어졌지 않았는지
형제들을 향하여 애처롭게 뻗은 손을
내가 잡았을 때
하늘의 사랑이 땅에 닿아
장차 다가올 구원자의 모형으로 꽃 피어나고
베들레헴의 허름한 마구간 위에
메시아의 별이 떠오르게 하는
빛의 연대기를 쓰게 되었다.
시인(새에덴교회)
여기 요셉을 형통에 이르게 한 또 하나의 주체가 있다. 요셉을 죽일 음모를 꾸몄던 형들 가운데 대표격인 유다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 아들이며 메시아의 조상이 된 사람이다. 시인은 그 유다를 화자로 하여 발화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배다른 동생 요셉은 그에게도 증오의 대상이었다. 이와 같은 이복형제의 갈등은 여러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될 만큼 빈번한 일이지만 요셉의 형들은 그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었다. 그래도 웅덩이에서 죽게 버려두지 않고 상인들에게 팔기는 했다. 시인이 보기에 그때 유다와 그 형제들은 알지 못했다. 화자 유다가 요셉의 '애처롭게 뻗은 손'을 잡아준 것이 나중에 그 가족 전체를 구제하는 역사(役事)의 시작이었음을. 시인은 '장차 다가올 구원자의 모형'이나 '메시아의 별'이, 그렇게 작고 사소하지만 미리 예비된 한 걸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언명한다.
-해설 : 김종회 교수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