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명맥은 유지될 것이라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낙관론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RA 기반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다. 급기야 전기차·배터리 업계를 위해 우호적인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 예상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마저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18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내년 사업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불안감을 토로한다. 새 행정부를 꾸리고 있는 트럼프 인수팀이 당선 일주일 만에 IRA에 근거한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다른 보조금과 다르게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는 소비자 개인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규모로 제공하는 보조금이다. 전기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폐지하는 것에 비해 산업적 파급력은 작다. 업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트럼프 인수팀이 IRA 관련 보조금 폐지를 제1 타깃으로 삼았다고 본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업계에 악재 중의 악재로 꼽힌다. 보조금이 사라지면 전기차 구매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고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받아왔던 AMPC 효과도 덩달아 반감된다. AMPC 덕에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던 국내 기업들로서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배터리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머스크 CEO마저 장기적으로 IRA 보조금은 경쟁사에 더 유리하다면서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입지를 키우려는 테슬라로서는 장기적으로 보조금이 없는 것이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산업계와 의회의 역할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IRA 관련 정책 수정을 위해선 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기차·배터리 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 의원들 반대가 거세지는 게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제로배출교통협회는 “(IRA는) 전국적으로 일자리 증가와 새로운 경제 기회를 창출했다”면서 “(IRA 폐지는) 투자를 약화하고 미국의 일자리 성장을 해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의회와 논의하면서 폐지 대상을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전체가 아니라 중고차나 리스차 보조금 등으로 좁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