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자사주 사놓고 무상 출연한다는 HL홀딩스

입력 2024-11-18 18:56 수정 2024-11-18 21:03

HL홀딩스(옛 한라그룹)가 회삿돈으로 사들인 자사주 대부분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주기로 하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결정이 정몽원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본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재단법인으로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자사주 47만193주를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출연하기로 지난 11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발행 주식 수의 4.76%로 약 163억3920만원어치다. HL홀딩스의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170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이를 실행에 옮기면 회계상 손실이 발생한다.


HL홀딩스가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넘길 자사주는 2020~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사들인 것(56만720주)이다. 회사는 당시 자사주 매입 이유를 ‘주주 친화 정책 시행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라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47만193주(83.8%)를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넘기기로 하면서 소액주주 이해와 배치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중 소각된 물량은 9만527주(16.2%)에 그친다. 최초 자사주 매입 공시 이후 현 주가를 비교해보면 20%가량 손실로, 주주가치 제고 목적 달성을 하지도 못했다. 이에 오너 일가를 위한 일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으로 포장한 ‘밸류업 워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HL홀딩스 이사회는 자사주 재단법인 무상출연 안건에 대해 반대 없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 일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사회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가 아닌 ‘주주’로 넓히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삼자 HL홀딩스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사주 출연 결정에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기관 투자가들의 반발도 거세다.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10.41%)의 김민국 대표는 “고려아연과 두산밥캣 사례에 이어 HL홀딩스가 새로운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례로 거론돼 안타깝다”라며 “회사가 상식적인 결정을 내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HL홀딩스 최대주주는 정 회장(25.03%)을 포함 특수관계인이 지분 31.58%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VIP자산운용,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5.37%) 등이 주요 기관투자가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HL홀딩스의 자사주 재단법인 무상 출연이 허용되면 모든 상장사가 재단 법인을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HL홀딩스를 포함해 상법 개정이 필요한 사례가 등장하면서 법 개정 논의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HL홀딩스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본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점이 아쉽다”며 “최소 5년 동안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 구체적인 사항은 재단 이사회에서 논의 후 정관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