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군의 현장 지휘관들을 소집해 전쟁 준비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핵무력 강화를 거듭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인한 군 내부의 동요를 다잡고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15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제4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 이틀차 행사 연설을 통해 “우리 무장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고 사활적인 과업은 전쟁, 전쟁에 대처한 준비”라고 강조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미국 탓으로 돌리며 강경한 대미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는 “평화·안정 파괴집단의 우두머리 미국의 더러운 정체성”이라며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은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거론하며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출범시켰다고 비판했다.
유사시 선제 핵 사용 가능성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남은 것은 핵무력이 전쟁억제의 사명과 제2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더욱 완벽한 가동태세를 갖추는 것뿐”이라며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국가의 자위력을 한계 없이, 만족 없이, 부단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행사는 2014년 11월 3차 대회 후 10년 만에 열렸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로 치면 두 번째다. 대대장 계급은 보통 대위 또는 소좌(우리 군의 소령)이며 대대정치지도원은 대대 군인의 사상 교육을 담당하는 정치장교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낮은 계급의 장교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진행한 것은 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인한 내부 혼란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파병 이후 동요할 수 있는 군심을 다잡기 위해 10년 만에 이 대회를 열고 발언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의 미국 관련 언급은 지난 5일 미국 대선 이후 처음 나온 것이기도 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내는 직접적인 메시지”라며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트럼프 당선 후에도 미국의 정체성은 변화가 없을 것으로 가정하고 핵무력을 중단 없이 강화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