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는 미국 교회가 처음 제안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일외교협상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으로 국민의 반발이 거셌다. 전국적으로 굴욕 외교를 중단하라면서 대규모 시위가 확산되자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해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지도부가 우리나라에 ‘국가조찬기도회’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을 받은 우리나라 교계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한 김준곤 목사를 중심으로 김종필 김영삼 박현숙 정일형 등 20여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조찬기도회’를 출범했다. 국가조찬기도회로 발전시키자는 논의는 국회조찬기도회 내부에서 구체화됐다.
지금의 국가조찬기도회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대통령 조찬기도회’는 1966년 닻을 올렸다. 그해 3월 8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렸던 첫 기도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지는 못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였다.
첫 기도회에는 이효상 국회의장과 정일권 국무총리, 한경직 목사, 노기남 한국천주교 대주교 등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비롯해 미국 ICL 대표가 참석했다.
2회 기도회는 68년 5월 1일 오전 8시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기도회에는 한경직 김준곤 목사를 비롯해 김수환 한국천주교 추기경도 함께했다.
‘국가조찬기도회’로 명칭을 바꾼 건 1976년이었다. 이 기도회는 국회조찬기도회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가 공동으로 준비위원회를 꾸려 준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공식 설립된 건 2003년의 일이다.
장창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