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어린이에 새 생명을… ‘사랑의 심장 수술’을 잇다

입력 2024-11-19 03:07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방한한 아이티 아이가 최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상태 악화로 수술을 받지못한 채 병실에 누워 있다.

2012년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아 국제연합(UN) 근무를 그만두고 아이티로 돌아왔다. 조촐한 선교센터를 열고 개원 예배를 드린 지 두 달 반 만에 한국의 한 의사 선생님이 아이티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을 해주고 싶은데 여기에 관심 있는지 문의했다.

의사도 아니고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임에도 심장 수술이란 말이 좋게 들려 수락했다. 의사는 “한 달 후 올 테니 심장환자 100명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아이티에서 환자 100명을 점검한 뒤 한국에 데려가 수술할 환자들을 직접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환자 100명을 모으기 위해 나는 아이티 전역에 있는 수십 개 병원을 직접 방문했고 아이티 의대 관계자와 아이티 심장협회 회원들을 만났다. 이들과 만남을 통해 이 나라에 심장 수술을 해 줄 병원, 수술할 의사, 대학에서 심장에 대해 가르칠 교수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극성스럽게 의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다 결국 환자 100명을 모았다. 한국 의료진이 아이티에서 8명의 환자를 선정, 한국으로 데려가 아이티 심장 환우들을 위해 첫 수술을 시작한 게 벌써 12년 전 일이다. 첫 수술 도중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을 겪었음에도 이 수술은 중단되지 않았다.

김혜련(오른쪽) 아이티 선교사가 아이의 얼굴에 손을 얹으며 의료진의 설명을 듣는 모습.

오히려 아이티 아이들을 위해 심장 수술을 해주겠다는 협력병원이 늘었다. 지난 10여년간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삼성병원이 꾸준히 수술을 해줬다. 올해도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아이 2명의 심장 수술을 집도했다. 지금까지 100명의 아이티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심장 사역은 과정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환자 모으는 일도 어렵거니와 출생신고서가 없는 아이들의 기초 서류를 만들어 여권을 만들고 미국 비자까지 받아야 하는 복잡한 행정 과정도 밟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이들과 부모들까지 200명 이상을 대상으로 미국 비자를 밟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주변 외국인 선교단체들에서도 부러움을 살 정도로 주님께서 축복해 주셨다.

올해 무장갱단의 폭력 사태로 2027년까지 아이티인의 방문 비자가 막힌 상태임에도 지금까지 진행된 선교단체의 사역을 높게 평가하면서 7명의 비자를 열흘 만에 선뜻 허가해 준 기적도 일어났다. 12년간 수술 도중에 생명이 위태로웠던 아이들은 늘 있었지만, 한국 의료진의 놀라운 기술과 수많은 이들의 중보기도로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현재는 아이티 의사들을 교육해 언젠가 아이티에 심장센터를 세우고 아이티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내년에도 한국에서 새 생명을 되찾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기대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님께 올려드리는 감사와 은혜만이 넘치게 된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글·사진 김혜련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