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환율… ‘트럼프 폭풍’ 빠르고 거세게 온다

입력 2024-11-18 00:11 수정 2024-11-18 08: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지며 정부와 산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IRA를 ‘녹색 사기’로 규정하고 폐지를 공약했는데 ‘공약 이행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거센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7일 “실제 얼마나 현실화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항상 최악의 경우를 놓고 봐야 하는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선 민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인수팀이 최대 7500달러(1대당) 규모의 전기차 세액공제 등 IRA 폐지를 계획 중이라고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IRA는 현지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 등에 미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현대차 등 완성차 기업과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배터리 기업은 IRA 보조금을 위해 수십조원을 들여 미국 공장 투자 계획을 쏟아냈다. 공장 설립 지역이 공화당 지역구인 조지아주 등과 미시간주 등 러스트벨트(쇠락 공업지역)에 집중돼 있어 IRA 전면 폐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산업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신정부가 진용을 다 꾸리기 전에 IRA 폐지 소식이 흘러나오며 정부와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폐지 범위가 국내 배터리 기업이 혜택을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까지 넓어지면 피해는 더 커진다. 산업부는 “로이터 보도에는 크게 3가지 IRA 혜택 중 전기차 세액공제 내용만 담겨 있고, 이것도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면서도 “미 신정부 정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했다.

대미 통상 압력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1년간 500억 달러에 달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관세 인상’을 천명한 트럼프 당선인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미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 대만 독일 베트남 등 7개국과 환율 관찰대상국에 등재됐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3.7%)이 지정 기준인 150억 달러, 3% 이상을 모두 넘기면서다. 지난해 하반기 제외 이후 1년 만에 다시 명단에 올랐다.

환율 관찰대상국은 그 자체로 불이익은 없지만, 대미 무역 흑자국을 손보겠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2016년 환율 관찰대상국에 지정된 후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정 요구를 받았다.

기존 '한·미 동맹' 인식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는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는 과정에서도 동맹국 협조를 구하는 단계가 생략될 위험이 있다"며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에 기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에 대한 맞춤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허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은 우선 상대를 놀라게 한 뒤 협상에 들어가는 스타일"이라며 "일희일비하기보다 미국과 주고받을 카드를 면밀히 따져보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미국 의회와 현지 여론 분위기를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