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43) 목사에게 대구는 낯선 도시였다.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하지만 2022년 10월 대구 범어교회 7대 담임목사가 되면서 대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는 대구로 오면서 두 가지 다짐을 했다고 한다. 사투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대구가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3일 범어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원래 SK 와이번스 팬이었어요. 부임 초기에 교역자들과 (삼성 홈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 간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삼성 대 SK의 경기였죠. 그땐 마음속으로 SK를 응원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대구가 얼마나 좋은 도시인지 알게 됐고 범어교회가 정말 훌륭한 교회라는 곳을 실감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도 좋아하게 됐으니까요.”
교사를 꿈꾸던 청년, 목회자가 되다
중앙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이 목사는 원래 교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진로를 정하는 일은 곧 인생을 결정짓는 일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도하면서 고민할 것을 당부했다. 이 목사는 교회 기도실에 틀어박혀 하나님께 답을 구했다. 그러면서 난생처음으로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을 실감했고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꿈을 품게 됐다. 이 목사는 “당시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려고 보니 3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총신대 신대원을 나와 인천 신광교회, 캐나다 밴쿠버 온누리교회, 서울 삼일교회 등을 섬기다가 범어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마흔 살을 갓 넘긴, 대구와 아무 관련도 없던 목회자가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 지역 대표 교회의 담임자가 된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그가 범어교회 담임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원로목사인 장영일 목사의 도움이 컸다.
“원로목사님이 처음에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대구 사람들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째리보는(째려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그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고. 이 밖에도 원로목사님으로부터 귀한 조언을 많이 얻었어요. 범어교회만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한 것도 알게 됐죠. 원로목사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범어교회가 있는 수성구는 ‘대구의 대치동’으로 불린다.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명문고가 즐비한 지역이다. 부임 이후 이 목사는 ‘예수님을 따라 세상 속으로’라는 문구를 목회의 모토로 삼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열곤 했는데 그중엔 동네 특성에 맞게 유명 입시 강사를 초청해 개최한 입시설명회도 있었다. 지역 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고 싶었기에 벌인 일이었다.
“과거엔 교회가 세상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교회가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시설명회를 앞두고 아파트 동장님이나 부녀회장님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어요. 올여름엔 주민들을 위한 야시장을 열기도 했는데 거의 3000명이 교회를 찾았고 그중엔 교회에 처음 오는 분도 많았어요. 정말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한때는 붕어빵을 구워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이렇듯 앞으로도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주민들로부터 범어교회 덕분에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나의 꿈,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것”
이 목사는 인천제2교회 원로목사이자 교회갱신협의회 대표회장 등을 역임한 이건영 목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건영 목사는 은퇴를 앞둔 2021년 12월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목사는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서 목회 인생 내내 설교문을 항상 외운 뒤 강단에 올랐다고 했는데 이런 모습은 그의 아들인 이 목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고를 달달 외운 뒤 설교를 하라는 것이 아버지의 조언이었다”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일주일 내내 설교를 고민한 뒤 강단에서는 원고 없이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조언 중 항상 염두에 두는 게 두 가지 있어요. 첫째는 설교를 준비할 때만 성경을 펴지 말라는 거였어요. 성경을 항상 읽으면서 묵상할 것을 당부하셨죠. 그리고 ‘불의 목회’를 하라고 하셨어요. 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너무 멀어지면 얼어 죽게 되잖아요? 어떤 성도하곤 가까이 지내고 다른 누군가와는 거리를 두는 목회를 해선 안 된다는 게 불의 목회에 담긴 뜻이었어요.”
이날 인터뷰 내내 이 목사가 강조한 것은 “일보다는 관계”라는 말이었다. 의미 있는 사역이나 이벤트를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성도나 지역사회와 단단한 관계를 쌓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디게 일이 진행될 순 있지만 관계 쌓기의 과정이 선행될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목회자로서의 꿈을 묻자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저의 목표는 심플해요. 성도들 덕분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성도들도 저 덕분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성도들과 함께 울고 웃고 싶어요. 그게 전부예요(웃음).”
대구=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