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단 대치가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국가 살림살이 방향을 결정하는 예산안 심사마저 비틀고 있다. 본격 심사 돌입 이전부터 여러 사업에 ‘김건희 예산’ 꼬리표를 붙여 칼질을 예고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회별 심사단계부터 해당 예산 삭감에 나섰다. 국회 핵심 업무인 예산안 심사가 정략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4일 예산결산심사소위에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예산을 정부안에서 74억7500만원 삭감한 434억5500만원으로 책정했다. 이 사업은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이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야당은 자살 예방에 관심이 많은 김 여사의 영향 속에 졸속으로 추진돼 집행률이 12%밖에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감액을 별러 왔다.
야당은 전날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관련 기본·실시설계 예산 62억400만원 전액 삭감을 단독 의결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7년 시작됐지만, 지난해 김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의 ‘삭감 1순위’ 사업이 됐다. 민주당은 지난해 배정된 예산 중 집행되지 않은 61억원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불용된 예산을 어떻게 내년에 쓰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야당이 ‘김건희 예산’ 삭감에 몰두하다보니, 하루 만에 입장이 정반대로 뒤집히는 촌극도 벌어졌다. 개식용 종식 사업이 대표적이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동물인지적 감수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삭감 경고를 했지만, 정작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날 예결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정부 예산안(544억1300만원)보다 397억원이나 증액해 의결했다.
민주당 농해수위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이 사안에 대해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니 당내 일부에서 ‘김건희 예산’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일부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가 동물복지 차원에서 당론으로 채택했었고, 관련 업계의 생존권 등을 고려해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여야가 증액으로 합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국토위는 용산공원 관련 예산도 토양 오염 등 사업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정부 예산안 416억6000만원 중 절반이 넘는 229억800만원을 깎아버렸다. 윤 대통령이 ‘용산 시대’ 1호 약속으로 내건 사업으로 대통령실 이전에 맞춰 미군기지 반환 부지 중 일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앞서 야당은 지난 8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 특수활동비(80억900만원)와 특정업무경비(506억원), 감사원의 특수활동비(15억원)와 특정업무경비(45억원)를 전액 삭감했다. 의석수를 앞세운 민주당의 예산 심사 독주에 정부·여당은 “무차별적이고 감정적인 사업 감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