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내준 野, 상법 개정 가속… 재계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

입력 2024-11-15 00:31
더불어민주당 박찬대(오른쪽)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왼쪽) 대표, 박정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4일 이사회의 주주 충실 의무를 규정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결정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후속 조치다. 민주당은 자본시장 선진화와 ‘개미투자자’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이번 정기국회 기간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경영 위축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의결했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고,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에게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로 소액주주 권익 강화 방안으로 꼽힌다. 개정안에는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으로 비율을 상향하는 내용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확대하는 방안도 담겼다.

상법 개정안 당론 채택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금투세를 폐지하는 대신 상법 개정안에 나서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이뤄졌다. 이 대표는 당시 “원칙과 가치를 저버렸다고 하는 개혁진보 진영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사회의 독립성과 견제·감시 기능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 개미투자자들을 공략하려는 의중도 담겼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법안을 관철하겠다는 대국민 보고를 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상법 개정안이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경제 8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해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상법 개정을 논의하기보다 어려운 경제 환경을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특히 한경협은 ‘지배구조 규제 강화 시 상장사 이사회 구성 변화 분석’ 보고서를 통해 감사위원 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10대 기업 중 4곳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면 국부 유출과 기업 경쟁력 하락, 소수 주주 피해 등 여러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규제 강화 논의에 앞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지난 11일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하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헤아려 달라”고 요청했다.

박장군 백재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