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아동, 트라우마 더 커… 정서·심리 회복 치료 필요”

입력 2024-11-14 01:12

전문가들은 부모의 살해 시도에서 살아남은 아동의 트라우마 반응은 다른 아동학대 피해보다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섬세한 정서·심리 회복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가해 부모를 대신해 피해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보호체계 마련도 주문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인데, 자신을 학대하는 걸 넘어 아예 생명을 끊으려고 할 때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는 클 수밖에 없다”며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의 모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아동은 ‘내가 잘못된 존재’라고 느끼거나 ‘나 때문에 부모가 힘들어서 그랬다’는 죄책감을 흔히 느끼게 된다”며 “부모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주되 부모가 세상에 도움을 청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거라는 점 또한 잘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 아동이 트라우마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당시의 고통이 재경험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담·심리 치료 등은 안전한 환경에서 서서히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게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존 아동의 피해 사건 이후 회복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판사가 가해 부모에게 양육 계획을 제출하게 한다거나 기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단순 양육 의사나 피해자 회복 정도만을 고려해 감형한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부모가 아동의 가장 좋은 보호자라는 사법부의 믿음이 아직 견고하다”며 “부모 외에 대안이 있을 만한 것을 얘기해주고, 상담을 해주면서 부모와 같이 살지를 섬세하게 묻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가정과 분리되더라도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보호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백 교수는 “사후관리 등은 기관이 임의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법체계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며 “그러려면 살해 후 자살 범죄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 아동의 회복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국 국립 피해자지원센터에서 살인 피해자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제프리 데마르코 세이브더칠드런영국 선임고문은 “영국에서는 살해 후 자살을 포함해 살인범죄 피해 아동을 지원할 때 ‘지원 종료’ 시점을 두지 않는다”며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일상을 회복해 나갈 수 있도록 정서적 지원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