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성가풍 찬송가집 인기… 성결교회 부흥 일등공신

입력 2024-11-16 03:07
장로교와 감리교 중심의 찬송가 편찬에 이어 성결교회는 ‘신증복음가’와 ‘부흥성가’를 연달아 편찬하며 성결교 교리와 오순절 신앙을 담았다. 한국찬송가공회 제공

성결교회의 찬송가 역사는 성결교 최초의 찬송가인 ‘복음가’(1907)에서 시작해 ‘신증복음가’(1919)로 이어지고 1930년 내용과 이름을 바꾼 ‘부흥성가’로 연결된다. 성결교회의 찬송가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은 초기 한국 찬송가 역사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성결교회의 찬송가는 초기 한국교회의 주류였던 장로교와 감리교 찬송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신학적, 음악적 특징을 보여줬다. 성결교회는 4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강조하며 성령세례와 오순절적 부흥 집회를 중시했는데 이런 점이 찬송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성결교회의 기원은 미국 무디신학교 동문인 선교사 카우만과 킬보른 그리고 일본인 목사 나카다 주지가 함께 1905년 설립한 동양선교회(OMS)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우만 선교사는 무디신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일본인 나카다를 만나 일본 선교의 비전을 품게 되었고 1901년 일본에 파송됐다.

이듬해 카우만은 무디신학교 동문인 킬보른을 일본으로 초청, 함께 동양선교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선교 사역을 진행했다. 카우만은 당시 일본 선교사들이 직접적인 전도보다는 간접적 교육 사업에 치중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고 이런 선교 철학은 이후 한국 성결교회의 실천적 전도 중심 사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교단을 먼저 세우기보다는 복음전도에 힘썼고 1921년에 가서야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라는 교단을 조직했다.

성결교회 찬송가 중 특히 주목할 것은 1930년 출간된 ‘부흥성가’이다. ‘부흥성가’는 ‘신증복음가’에 32곡을 증보해 출간한 개정증보판이다. 편집은 동양선교회 헤인스 선교사(한국명·허인수)의 부인인 머틀 헤인스 선교사와 한국인 염형우가 담당했다. 장·감 연합 찬송집 ‘찬숑가’(1908) 편찬에 안애리(애니 베어드) 선교사가 활약했던 것처럼 ‘부흥성가’ 출판에도 여성 선교사의 활약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헤인스 선교사는 이후 45년간 서울신대 음악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교회 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부흥성가’ 편집에는 이미 당시 애창되던 찬송가와 동일한 번역으로 편집했다. ‘찬양가’ ‘찬미가’ ‘찬셩시’ ‘찬숑가’ 등 출간된 타교단 곡들을 그대로 실었는데 ‘신증복음가’의 경우 ‘찬숑가’와 비교해 70개 넘는 곡이 동일 번역을 사용했다. 그러나 ‘신증복음가’를 보완한 ‘부흥성가’에는 장·감 찬송가에는 없는 부흥성가풍 찬송가가 200여곡 이상 실렸다. 이는 성결교회가 부흥회 중심의 실천적 복음전도를 위해 이 같은 찬양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행군 나팔 소리에’(360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35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348장) 등이다.

이런 찬송가풍은 실제 성결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1930년 전후 나온 ‘신증복음가’와 ‘부흥성가’는 출판 즉시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복음성가풍 찬송가를 활용해 악대를 동원한 찬송으로 노방전도를 열심히 한 결과 성결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에 이어 한국교회 3대 교단에 등극할 정도로 큰 부흥을 이뤘다.

‘부흥성가’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아이라 생키의 복음성가집 ‘가스펠 힘즈(Gospel Hymns) 1~6권’에서 상당수 곡을 차용했다. 이는 성결교회의 찬송가가 단순히 한국 개신교 음악의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당시 세계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과도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부흥성가’는 19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의 찬송가곡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성결교회 찬송가는 한국교회 연합 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통일찬송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합동찬송가’(1949)는 성결교회 찬송가의 전통을 반영한 찬송가였기에 성결교회의 찬송가는 한국교회 연합운동과 깊이 연계돼 있다. ‘합동찬송가’는 성결교의 ‘부흥성가’(1930), 장로교의 ‘신편찬송가’(1935), 감리교의 ‘신정찬송가’(1931)를 통합해 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1983년 교단 연합 찬송가인 ‘통일찬송가’를 제작할 때도 ‘찬송가합동연구위원회’의 회원 자격으로 참여하며 연합 찬송가 편찬에 기여했다.

성결교회 찬송가는 이렇듯 초기 찬송가 역사 속에서 복음전도와 부흥운동, 교회연합 등 다방면에서 한국 찬송가 발전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용남 한국찬송가공회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