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거장의 진가를 파악하기 위해선 그의 저작 중 어떤 걸 살펴야 할까. 이론과 분석을 집대성한 벽돌책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그렇지만 쉬운 언어로 쓴 작품으로도 차별화된 깊이를 만들어내는 게 거장의 힘이다.
초기 기독교 역사가이자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와 ‘21세기의 CS 루이스’로 평가받는 고(故) 팀 켈러 미국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목사의 한국어판 신간도 이런 책 중 하나다. 라이트 교수의 저작은 하나님 나라 개념으로 복음을 풀어낸 어린이용 성경이고 켈러 목사의 책은 여러 대표작을 응축한 365일 묵상집이다. 성경 연구와 설교에 노련한 신학자와 목회자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어린이 성경으로 이해하는 하나님 나라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하면서 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해진 (말씀의) 핵심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라이트 교수가 ‘빅 스토리 바이블’ 서문에 밝힌 저술 배경이다. 손주가 생기면서 어린이의 성경공부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이 책의 집필 제안을 받고 신이 났다”고 운을 뗀다. “그간 다수의 어린이 성경책이 전체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보여 주지 못한다고 느끼던” 참에 들어온 의뢰라서다.
라이트 교수는 “신구약 성경에서 조금씩 맛보기처럼 가져와 나열한 어린이 성경에선 하나님의 위대한 드라마가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해 감을 잡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일관되게 들려주는 ‘빅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피조물인 인간과 함께 계시려는 장소가 바로 이 세상”임을 알 때 “성경의 여러 이야기가 일종의 ‘기독교식 이솝우화’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책은 라이트 교수가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계 21:3)는 말씀을 연결고리 삼아 신구약 성경 이야기 140가지를 유기적으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각 편 하단에 연결되는 이야기에 쪽수와 주제를 기록해 ‘하나님 나라 관점’이란 큰 틀에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에덴동산을 설명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이야기를 참조하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유월절과 희년, 성막의 의미와 복음서가 묘사한 하나님 나라, 초대교회 형성사 및 사도의 결의사항 등 신학·교회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내용도 충실히 반영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초대교회사와 바울 신학을 해설해 성인도 어렵지 않게 그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하루를 바꾸는 팀 켈러의 설교
‘팀 켈러, 사랑으로 나아가는 오늘’은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등 저자의 베스트셀러 19권 속 주요 내용을 묵상집 형태로 편집한 책이다. 원제는 ‘팀 켈러와 함께한 1년’으로 팀 켈러의 저작에서 발췌한 글을 성경 구절과 함께 묵상할 수 있다. 하루 치 분량으로 구성된 토막글 주제는 기도와 용서, 이웃 사랑과 부활, 직업윤리와 사회 정의 등이다. 성경 구절의 해설을 주로 다루는 기존 묵상집과는 달리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전면 배치해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관련 주제의 글을 더 깊이 탐독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책 끝엔 출전도 실렸다. 저서별로 인용된 토막글을 분류해 한눈에 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믿음에 배치되는 생각과 길고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자신은 물론 회의주의자에 맞서 자기 신앙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저자인 만큼 책에는 복음 이해와 실천을 위한 이성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조언이 가득하다. 읽을수록 “팀 켈러의 설교는 문학적 암시와 철학적 내용으로 가득하고 역설적이면서도 학구적”이라고 표현했던 미국 주간지 ‘뉴요커’의 평가가 실감 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