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덕경수목원, 황금빛 은행나무 터널 아래 만추의 붉은 여심

입력 2024-11-14 04:11
전남 담양군 수북면 삼인산 기슭 수목원에 조성된 은행나무숲을 찾은 여행객이 키 큰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는 길에서 황금빛 가을 추억을 담고 있다. 아쉽게도 올해 숲 개방 기간이 끝나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전남 담양은 ‘숲의 도시’다. 대나무골 담양을 상징하는 것은 대나무만이 아니다. 군 전체가 하나의 정원이자 문화예술 공간이다. 죽녹원, 메타세쿼이아길, 관방제림 등 곳곳에 정자와 원림이 산재해 있다.

담양에는 세계적인 자연유산에 견줄만한 역대급 숨겨진 보물들이 많다. 3대 자연유산도 있다. 유네스코가 공식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오묘한 형상을 보여주는 세 곳을 주민들이 꼽은 것이다. 수북면 들녘에서 바라보면 피라미드를 닮은 삼인산(三人山·570m), 가을밤에 바위 봉우리가 달에 닿을 듯 높아 보인다는 추월산(秋月山·731m), 1976년 완공된 거대한 인공호수 담양호다.

삼인산은 해발 570m로, 사람 인(人)자 3개를 겹쳐 놓은 형상이어서 얻은 이름이다. 뾰족한 산은 피라미드를 닮아 ‘담양의 피라미드’로 통한다.

이 산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자신의 임금 등극을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던 중 꿈에 삼인산을 찾으라는 성몽 끝에 찾아 기도해 꿈을 이뤘다. 그래서 몽성산(夢聖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 산기슭에 가을에 찾아볼 숲이 있다. 아직 덜 알려진 은행나무숲이다. 숲은 사유지인 ‘덕경수목농원’ 안에 있다. 입구는 성암문이다. 약 300m 올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들어가 약간 경사진 숲길을 올라가야 만난다. 10분쯤 오르면 입구에 다다른다. 단풍나무 등이 울긋불긋한 수목원 가운데 직선의 비포장도로가 뻗어가고 양쪽으로 황금색 옷을 입은 키 큰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700m 거리의 길은 양쪽으로 150그루 이상의 나무로 이뤄져 있다.

100만㎡(약 30만평) 규모 숲의 소유주는 김모 대표다. 이 땅은 애초 광주광역시에서 안과를 운영하던 한 의사 집안 소유였다. 대전에 종합병원을 짓는 과정에서 부도가 나면서 부지는 한 건설회사로 넘어갔고 이 회사는 은행나무 등을 심어 조경했다. 이후 10년 전부터 김 대표가 인접한 종중 땅도 모아 조림하면서 수목원으로 가꿔나갔다. 은행나무길 옆엔 단풍·편백·벚나무·밤나무·전나무 등 구역별로 다양한 수종이 자리하고 있다.

깎아지른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추월산.

용면 월계리 추월산은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로, 가을에 올라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호남 의병의 본거지였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배신자의 밀고로 위기에 몰린 전봉준이 끝까지 항거한 곳이다.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 바위 가운데 조선 선조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피해 바위에서 뛰어내려 순절했다는 곳이 있다. 바위에 음각된 비문이 있다. 그 주변 바위에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피난처였던 추월산 동굴 내부에서 본 풍경.

임진왜란의 아픔을 간직한 의병 전적지 기념비는 등산로 입구에 있다. 이곳을 지나 빽빽이 들어찬 노송의 운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임진왜란 때 피난처가 됐을 동굴을 만난다.

영산강 상류 인공폭포와 목교 등을 갖춘 담양호.

담양의 추월산과 용추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담양호’는 영산강 상류로, 담양평야와 장성군 진원면·남면의 농토를 적셔주는 농업용 수원이다. 추월산 관광단지와 금성산성, 영산강의 시원 가마골 등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볼 수 있어 여행객의 발길이 잦다.

담양호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용 조형물이다. 달그림자가 드리울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담양호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용을 닮았다. 오래전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설이 있다.

담양호수변 도보길 용마루길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목교를 건너가면 ‘용마루1길’(총거리 3.9㎞)이다. 오른쪽에 담양호, 왼쪽에 산자락을 두고 길을 걷는다.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한 몸을 이룬 연리지(連理枝)도 눈길을 끈다.

무심정 인근 기암괴석 위 소나무의 비경.

새로 조성된 ‘용마루3길’은 목교부터 수변을 따라 용면 도림리까지 이어진다. 길 가운데 정자 ‘무심정’이 있다. 무심정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수변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고, 추월산 무릉도원터널 앞에 만들어진 미포장 임도를 이용할 수 있다. 차단기가 있는 입구에서 무심정까지는 1㎞ 거리. 담양호로 돌출된 자리에 세워진 무심정은 최고의 경치 전망대다.

주변에 ‘무릉도원’으로 불리는 비경이 있다. 안개 낀 날 이곳은 신선들이 노닐만한 무릉도원 같아서 이름을 얻었다. 호수 옆 깎아지른 기암괴석의 소나무 몇 그루가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여행메모
덕경수목농원 은행나무 이번 주말 절정
메타세쿼이아길·관방제림 패션쇼 볼만

덕경수목농원은 담양 성암국제수련원캠핑장 인근에 있다. 입구인 성암문의 주소는 수북면 대방리 산 21-1이다. 은행나무 숲길은 매년 단풍이 절정인 10월 28일부터 11월 12일까지 무료 개방한다. 올해는 이상고온 영향으로 이번 주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주차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길 주변에 주차해야 한다.

추월산 입구는 관광지다. 무료 주차장이 크게 마련돼 있다. 산과 호수 모두 무료입장이다. 무심정으로 가는 임도는 ‘추월산 무릉도원터널’ 바로 옆에 있다. 용면소재지에서는 터널 지난 직후 오른쪽에, 추월산관광지에서는 터널 직전 왼쪽에 있다. 비포장도로지만 일반 승용차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다. 터널 반대편에는 담양호를 조망하는 ‘전망 좋은 곳’이 있다.

이맘때 담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은 메타세쿼이아길과 관방제림이다. 메타세쿼이아길에서는 양쪽 길가 높이 10~20m의 원뿔 모양 메타세쿼이아가 주홍색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한다.



담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