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사역, 지원 넘어 관계적 돌봄으로 전환을

입력 2024-11-13 03:02
우울증 환자를 비롯해 정신질환을 앓는 아동·청소년이 매년 늘고 있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죽음과 고통으로 절망의 늪을 헤매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와 회복으로 이끄는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자가 매년 늘면서 치료와 회복을 위한 교회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온누리교회 회복사역본부가 펼치고 있는 관계기술 훈련을 통한 소그룹 모임 현장. 온누리교회 제공

‘사이코 패밀리’.

고직한(70·사진) 선교사가 자신의 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신병 환자’를 의미하는 사이코(Psycho)가 아니다. 철자 일부를 바꾼 사이코(Psykoh)다. 고 선교사 가족의 성인 고(Koh)를 합친 조어인데,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정신질환을 겪은 경험이 있기에 붙인 이름이다.


고 선교사 부부의 두 아들은 20년 넘게 조울증을 앓고 있다. 두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횟수만 17차례가 넘는다. 고 선교사 부부도 대학 시절 불안장애와 신경증, 경조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은 바 있다.

고 선교사는 “저희 부부는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병을 극복했지만 두 아들의 상황은 다르다. 조울증은 쉽게 재발하기 때문”이라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청중과 공유했다. 젊은 목회자 연합 사역단체인 JDHUB(Jesus&Disciples HUB·대표 이길주 목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방주교회(반태효 목사)에서 마련한 포럼에서다.

‘크리스천의 우울, 바로 보기’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으로 꼽히는 우울증을 주제로 개인과 단체의 회복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고 선교사 가족은 유튜브 채널 ‘조우네마음약국’을 운영하며 정신질환 극복기를 공유하고 상담도 한다. 고 선교사에 따르면 상담자 중 약 70%는 크리스천인데, 문제는 교회에서도 정신질환의 고통을 털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 선교사는 “교회가 편견 어린 시선이 아닌 공감과 이해의 눈빛으로 다가가야 한다”면서 ‘정품교회’를 강조했다. 정서·정신적 약자를 품는 교회란 뜻이다.

이 같은 주장은 교회가 경제·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정서·정신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내미는 ‘멘털케어 커뮤니티’, 즉 정신건강을 보듬는 공동체로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목데연)가 발간한 ‘2025 한국교회 트렌드’ 10대 키워드 중에서도 멘털케어 커뮤니티가 꼽혔다.

고 선교사는 “정신질환은 귀신 씌이고 그런 것이 아닌 우리 몸인 뇌의 질환”이라며 “생물학적 취약성에 따라 앓게 된 질환이기에 정확한 정보를 통한 올바른 약 처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벽 1시든 언제든 너를 위해 있어 줄게’와 같은 말처럼 소중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럼에선 우울증 회복을 위한 교회 공동체의 사례와 역할도 제시됐다. 키워드는 ‘관계의 중요성’이었다.

이기원 온누리교회 회복사역본부장은 “성장과 치유, 성숙과 믿음의 진보는 모두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면서 (온전한 관계 회복을 위해)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돌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의 경우, 관계기술훈련을 펼치고 있다.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중심으로 한 우울증 치유 활동이다. 단순한 우울감을 겪는 이들을 물질로 돕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미술 독서 수련회 밥상공동체 등 함께 모여 관계를 회복하고 쉼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승일 서로돕는가족상담교육연구소 대표는 활용 가능한 ‘안전망 구축’을 강조했다. 그는 “우울감을 띤 이들에게 온정주의로 다가가선 안 된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파악하고 기관·제도 등 주변 자원을 파악해 서비스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그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우울증 환자는 2020년 기준 100만을 넘어섰다. 특히 청소년의 정신질환(우울증·ADHD 등) 진료 인원(그래프 참조)은 2018년과 2022년 대비 1.5~2배까지 급증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