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진원지로 1980년 창립전을 가진 ‘현실과 발언’이 주로 언급된다. 그러나 미술의 사회적 참여를 주창한 1980년대의 민중미술 운동에 ‘현실과 발언’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술 동인 ‘두렁’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40주년 창립 기념전 ‘두렁, 지금’ 전을 마련, ‘두렁’이 실천해온 독특한 미술 운동 발자취를 조명한다.
‘두렁’은 1982년 김봉준, 장진영, 김우선, 이기연 등이 발기했고 이후 김명심, 김주형, 김노마(본명 김경옥), 라원식(본명 양원모), 박홍규, 이억배, 이은홍, 정정엽 등이 합류했다. 이듬해 창립예행전을 거쳐 1984년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40주년 기념전에서는 두렁이 제도권에서 가르치는 단색화 중심 추상 미술에 반기를 들고 80년대라는 엄혹한 독재 시대를 어떻게 통과했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지형이 바뀐 90년대 이후에는 어떤 예술적 실천을 했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현실과 발언이 서울대 중심, 두렁이 홍익대와 이화여대 중심이라는 학맥 차이도 있지만 현실과 발언이 상대적으로 작가 주의를 지향한 것과 달리 두렁은 농촌, 공장, 학교 등 현장으로 들어가 현장 미술을 하고자 했다.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라원식씨는 “두렁은 출발부터 탈춤반·연극반·민화반 등 동아리가 주축이 돼 탈춤, 풍물, 민화 등 민속 문화 부흥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그림 형식에서도 탱화의 3단 구도와 걸개, 민화의 도상과 필선 등이 차용됐다”라고 회상했다. 1983년 기독교장로회의 주문으로 예수의 생애를 5폭 걸개 형식으로 집단 창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방 체제를 가동해 판화, 달력, 엽서, 티셔츠, 만화 등에 미술을 담는 생활 미술을 지향했다. 현재 순수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두렁 출신이 정정엽, 김봉준 정도로 극소수인 것은 이런 지향점 때문인 것으로 분석 된다.
대부분이 일상의 현장에 뿌리를 내려 이억배는 그림책 작가로, 이기연은 생활 한복 브랜드 ‘질경이우리옷’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진영은 민중 만화 영역을 개척했다. 2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