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441장(통 49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5장 24~26절
말씀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4문에는 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위반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정의할 때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넘어서는 것도 죄이지만 미치지 못하는 것도 죄라고 말입니다. 가령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죄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됩니다. 미워하는 것은 기준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죄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극적 죄입니다.
게으름과 나태는 소극적인 죄에 속합니다. 이것을 중세시대 수도사들은 ‘정오의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해가 뜬 정오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미루고 나중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시간에 쫓겨서 하지 못하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또 열심히 일하지만 ‘나태한 열심’도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다는 핑계로 정말 중요한 것을 하지 않는 것도 나태의 일종입니다.
성경에는 주인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했는데 자신의 일들이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14:20) 장가가는 것, 밭에서 일하는 것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정말 중요한 생명을 구하는 것에 소홀히 할 때 성경은 부지런하다고 말하지 않고 ‘게으르다’ 말합니다. 그래서 일중독도 나태의 한 형태입니다. 개인의 포상에만 집중하는 자기중심적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하지 않고 그것을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게으른 것과 악한 것을 동일시합니다.
나태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와 섬김과 사랑을 충분히 드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종이 장사를 잘못하여 주인에게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아예 장사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요구에 저항하는 죄입니다.
나태를 극복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인생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 수고의 동기는 자신의 부족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노라 말합니다. 은혜는 게으르지 않게 합니다. 사랑은 더욱 열심히 주를 섬기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주를 위해 살고 싶은 열심이 생기게 됩니다.
기도 :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주님의 열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