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의 시계보다도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이마누엘 칸트가 나의 일과를 본다면 “제법인데”라고 인정했을 만큼 바뀌는 건 날짜뿐인 나날을 보냈다.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바삐 일하고 노곤한 어깨에 달빛을 지고 퇴근하는 하루가 빤히 그려지는 출근길, 불현듯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욕구에 발길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할 일은 나 몰라라 한 채 즉흥적으로 떠올린 목적지로 출발했다. 그곳은 어릴 적 소풍의 끝판왕, 놀이공원이었다.
생업과 책임의 나라에서 꿈과 환상의 나라로 떠나는 도주극은 올해 본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했다. 놀이공원 입구는 평일임에도 인파로 북적였고,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마음을 들뜨게 했으며 요란스럽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는 어서 오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호기롭게 자유이용권을 끊었지만 기나긴 대기 줄에 엄두가 나지 않아 정원만 어슬렁거렸는데 그마저도 즐거웠다. 아찔한 놀이기구를 보며 가슴을 철렁였고 시름을 잊은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보며 같이 웃었다. 기어코 나는 두 시간을 기다려 놀이기구 하나를 탈 수 있었는데, 짜릿함은커녕 멀미가 나고 다리가 후들거려 혼이 났다. 13년 만에 찾은 놀이공원에서 정통으로 세월을 맞은 몸을 느끼고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떠올라 우스우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화려한 불꽃놀이로 일탈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일상의 단조로움은 놀이공원 바깥에 머물렀기에 나는 천진한 아이처럼 모든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권태로웠던 일상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으로 나를 맞이했다. 삶의 건강한 균형을 위해서는 일상의 안정된 흐름을 따르면서도 묵은 공기를 환기할 수 있는 순간을 더 해주어야 하는가 보다.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활력을 주는 일탈이라면 언제든지 일상의 문을 활짝 열어도 좋겠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