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성경(King James Version·KJV) 유일주의’를 두고 초교파 차원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KJV는 1611년 잉글랜드 국왕인 제임스 1세의 명으로 편찬돼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읽는 성경 번역본으로 꼽힌다. KJV 유일주의는 KJV만이 유일하게 하나님 말씀을 보존하고 있으며 다른 사본과 역본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불건전한 사상이다.
교계 전문가들은 “극단적 유일주의는 성경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초래하고 KJV를 사용하는 교회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라는 잘못된 신앙관을 갖게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한국교회가 다양한 번역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함께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이단연구학회(회장 유영권 목사)는 지난 9일 경기도 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KJV, 영감받은 유일한 성경인가’를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는 KJV가 교회사의 소중한 유산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극단적인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들이 주를 이뤘다.
유영권 한국기독교이단연구학회장은 주제발표에서 “성경은 모든 신앙의 뿌리이자 근원이며 성도들의 신앙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며 “KJV 유일주의가 여전히 혼란을 낳는 건 교계에서 다양한 성경 역본에 대한 이해나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성도들에게 다양한 번역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또 KJV 출현 배경과 의의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민 장로회신학대 성서학 연구원은 1516년 인쇄된 그리스어 신약성서 본문인 ‘공인본문’(TR)을 번역한 KJV는 여러 번역성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KJV는 유구한 번역사의 흐름에 있는 하나의 역본일 뿐이지 다른 역본들과 비교할 때 유일하게 참된 번역본이라고 추켜세울 근거는 전혀 없다”고 전했다.
김영호 합동신학대학원대 신약학 교수는 “루터성경이 독일어의 근간이 됐던 것처럼 KJV는 하층민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쓰는 언어의 근간이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KJV를 읽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KJV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원본과 번역의 차이, 사본과 성경의 영감 및 무오성의 관계를 오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천설 총신대 신약학 은퇴교수는 “KJV만을 고집하면 또 다른 번역본을 중시하는 이와 유사한 배타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며 “성경이 지속적으로 개정되고 새로운 역본이 잇따라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저본(문서의 초고)과 번역 원칙의 차이를 이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상황에 맞는 역본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