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밖의 베를린 거리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담한 역과 하늘을 뚫을 듯 커다란 미루나무가 바로 보이는 이곳은 내가 살기로 결정한 집이다. 서울에서 베를린으로의 이주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던 시간들은 이곳에서의 정신없는 정착 준비 과정에 파묻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의 얼굴은 도착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깊은 그리움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독일로 거주지를 옮길 것이라는 소식을 주변인들에게 전했을 때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거나, 베를린이 채식주의자 예술가가 살기 좋은 도시라거나,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거나, 외국어로 글을 써보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숱한 이유를 중언부언 늘어놓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는데, 사실은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말한 일들을 모두 실제로 할 예정이었지만 사실 그냥 이곳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고 그럴 때 이유란 덧붙여지는 장식 같은 것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유를 말해버리는 순간 이유가 될 수 있었던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베를린에 온 이유를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면 다른 모든 이유들은 가려진다. 하나의 이유가 말해질 때 다른 이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정전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유가 될 뻔했던 다른 이유들의 얼굴은 그곳에서 어둡게 지워진다.
이유가 될 뻔한 것들의 얼굴을 지우는 단 하나의 이유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유는 뭘까? “왜”는 분명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해나가며 문명을 발전시켜왔음에도 이유에는 언제나 빈자리가 있다. 그 점이 나는 오히려 어떤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