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양천구 양화초등학교 앞 골목길. 빨간색으로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띠가 둘린 철제 패널 바로 옆에 있는 차도를 따라 학생들이 아슬아슬하게 등교하고 있었다. 폭 4m의 이 차도는 양화초 학생들의 주된 통학로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학생들이 차도 맨 끝으로 붙어야 할 정도로 좁다.
다음 주부터 ‘목동 LH형 가로주택정비사업 철거공사’가 시작되면서 학부모들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등굣길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공사 현장에 85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기존 건축물은 철거된다. 학부모들은 철거 폐기물을 실어 낼 덤프트럭이 등굣길을 오가게 되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이곳에서는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당시 재건축조합이 철거 작업 전 부른 정화조 차량과 인근 주민의 이사 차량이 도로에 서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던 한 학생이 차에 치일 뻔한 한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부산 영도구의 한 초등학교 통학로에서 등교하던 초등학생 1명이 지게차에 실려 있던 약 1.5t 무게의 원통형 화물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학교 근처에서 이뤄지는 공사가 어린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학생 안전을 위해 최소 등하교 시간만큼은 건설기계의 보호구역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주정차 및 속도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하지만 보호구역 내부나 인근 공사현장 안전관리에 대한 지침이나 규정은 없다. 이에 각 학교가 시공사 측에 안전 조치를 일일이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화초도 철거공사를 맡은 시공사에 학생들 등교 시간인 오전 8~9시엔 차량 통제 등을 맡는 신호수를 배치하고, 낙하물 방지 펜스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공사 측은 비용 문제 탓에 건설기계 출입 시에만 신호수를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등교 시간에도 건물 외부 공사 대신 내부 공사는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공사 제한 규정도 없다. 지자체는 학교나 학부모의 민원을 시공사에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양천구 관계자는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공사기계의 작업을 자제하도록 시공사에 권고했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어린이 통학 안전을 위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난 8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등하교 시간대 건설기계의 통행을 제한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해 교통지도 활동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안전요원 인건비나 공사기간 연장을 이유로 법안에 반대하면서 입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김민회 양화초 교감은 “아이들이 학교로 오는 길이 공사판이 돼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어린이 보호구역 내 건설행위에 대한 안전 규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