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라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에서 독립성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자신의 집권 2기 행정부에서 중앙은행의 권한인 통화정책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연준을 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지난 8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부동산 사업 경험을 언급하며 “내 직감이 연준 의장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은 연준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연준이 5.25~5.50%까지 끌어올린 고금리를 유지해 제롬 파월 의장이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던 때였다.
하지만 행정부 수장이 통화정책에 개입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세계 금융가에 논란을 몰고 왔다. 정치적 판단대로 금리를 결정하면 결국 고물가를 촉발한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실제로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서 번스 연준 의장에게 통화정책 완화를 압박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를 동반한 물가상승)을 촉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준이 대선을 2개월 앞둔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빅컷’(0.5% 포인트 금리 인하)을 단행하자 트럼프는 ‘선거 개입’이라며 파월 의장을 비난했다. 금리 인하가 대권 경쟁자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트럼프는 자신의 집권 1기인 2017년 직접 임명한 파월 의장과 임기 중에도 고금리를 유지하려 한다는 이유로 마찰을 빚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듬해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임명되면서 임기를 2026년 5월까지 보장받은 상태다. 트럼프는 재집권하면 파월 의장과 1년4개월간 동행하게 된다.
트럼프는 파월 의장을 레임덕에 빠뜨리기 위해 배후의 실권자를 세우는 ‘그림자 연준 의장’도 구상하고 있다. 트럼프의 경제 자문역인 헤지펀드 키스퀘어의 스콧 베센트 최고경영자가 제안한 이 구상은 파월 의장의 임기 만료 전에 후임자를 미리 선출해 상원의 인준을 받아놓는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트럼프의 참모진이 이 구상과 관련해 최소 6명의 대형 은행 로비스트 및 전직 연준 이사들과 전략을 논의했다”며 “은행 경영자들과 전직 연준 인사들은 트럼프가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