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낙태 반대’ 설파한 트럼프, 美 기독교인 표심 얻어 당선

입력 2024-11-07 03:00
2024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재임 기간인 2020년 6월 백악관 인근의 유서 깊은 교회인 세인트존스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들어 보이며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AP뉴시스

5일(현지시간) 2024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권이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설파한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이슈가 결국 복음주의권 기독교인들의 표심을 얻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대선의 핵심 경합 주 가운데 한 곳인 조지아주는 이번 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주요 경합 주 중 하나였다. 트럼프는 개표가 막 시작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해리스 부통령을 상대로 개표 내내 우세를 보이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동남부에 자리한 조지아주는 기독교 신앙이 강한 ‘바이블 벨트’에 속한다.

트럼프의 기독교 신앙과 신념도 재조명 받고 있다. 여러 도덕적 결함으로 비난을 받았던 그는 그동안 복음주의권에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프로라이프(낙태 반대)와 동성애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동성애·동성혼을 비롯한 성오염이 거세게 밀려드는 세태 속에서 유럽교회의 경우 이미 손 쓸 수 없는 단계로 건넜다면, 미국교회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동성애 및 낙태 이슈가 자리 잡고 있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다윗과 솔로몬에 빗대며 호응했다. 여러 도덕적 결함이 있던 그를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로 명명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 임기에서 약속대로 공약을 지켰다. 2016년 대선에서 “내가 당선되면 기독교가 힘을 가질 것”이라고 장담한 그는 낙태에 반대하는 생명 옹호 성향 대법원을 임명할 것을 약속했다. 2022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었다.

보수주의권이 우려하는 동성애 이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과거 재직 당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했다. 지난 7월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트랜스젠더 복서에 대해 “스포츠에서 남자와 여자가 경쟁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민주당 후보로 나선 해리스 부통령은 동성애자 권익 보호를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대선을 불과 3개여월 앞둔 지난 7월 13일 트럼프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을 맞은 그는 총격 순간 고개를 돌린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오른쪽 귀 윗부분이 관통당하는 상처를 입었다.

트럼프는 당시 피격 사건에서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우하심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피격 후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며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 회복력을 유지하고 사악함에 맞서 저항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살아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그는 놀라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조카인 알베다 킹 박사는 “저의 기도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미국인과 함께한다. 미국이 기도, 용서, 비폭력, 그리고 단결에 헌신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피격 사건 다음날에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개최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 8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간증하는 모습. 여의도순복음교회 유튜브 캡처

그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8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에 참석해 “나는 피격 당시 하나님의 손이 아버지를 만졌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 가족의 믿음은 더 커졌다. 이 일을 (TV나 인터넷으로) 목격한 세계인들의 믿음도 강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부활절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SNS와 유튜브를 통해 “모든 미국인에게 성경이 필요하다”며 성경 판촉에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 바이블은 59.99달러로 아마존닷컴에서 판매하는 같은 번역본 성경보다 약 3배 비싼데다 표지 중간에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란 제목이 아로새겨져 있다. 특유의 국가주의와 기독교 가치를 혼합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