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교수 분리 어려워”… 인권센터 조치에 또 우는 피해자

입력 2024-11-07 01:20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A씨는 2022년 말부터 B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A씨는 학내 인권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첫 대면조사 당시 A씨는 센터로부터 “가해자와 분리조치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A씨는 교내를 오가면서 B씨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교수에게 성희롱과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다른 학교 대학원생 C씨도 피해를 신고한 지 1년3개월이 지나서야 인권센터의 결정을 받게 됐다. 해당 교수에 대해 경징계를 권고한다는 내용이었다. 6개월 내 사건 처리를 하도록 한 센터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사를 담당하는 센터 전문위원이 공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C씨는 1년 넘도록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대학 내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고 학생과 교직원 등의 인권 보호를 위해 2022년부터 설치를 의무화한 인권센터가 피해자 권리를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학교 내부 구성원으로 이뤄진 인권센터 구조로 인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큰 탓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지낸 서혜진 변호사는 6일 “인권센터는 학내 교수들이 센터장 등을 겸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폐쇄적이고 피해자 친화적이지 않다”며 “4년 전 맡았던 학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도 가해 교수와 센터 간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두려워 신고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김종일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관련 법상 센터장은 보통 부교수 이상으로 임명되는데, 근속연수가 길면 학내 친분이 있는 교수가 많아져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시킬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선 인권 감수성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재학생 5000명 이상의 국내 39개 국립대 인권센터 가운데 변호사 자격증을 갖춘 학내 상주 전문위원을 둔 곳은 서울대와 부경대뿐이었다. 일부 대학은 접수된 사건별로 외부 전문위원을 위촉하고 있지만,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인권센터에 전담 인원이 부족해 성폭력 등의 사건 발생 초기 대응이 지연되는 문제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92개 대학 인권센터의 전담인력은 평균 0.9명에 그쳤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업무와 인권침해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각각 배치해야 한다. 최소 2명이 필요한데 현재는 전담 인원이 평균 1명조차 없는 셈이다. 인권센터 구성원이 학교 행정업무 등을 하지 않고 센터 업무만 전담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 대학 인권센터는 12곳(3.8%)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인권위는 교육부에 “전문성 있는 전담 인력을 1명 이상 배치하고 구체적 재정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난 3월 권고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