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 했을 때 끝이 아니었다… 90세 현역 작가의 인생 고찰

입력 2024-11-08 04:05

스무 살 청년은 소설가를 꿈꿨다.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해 잡지에 응모했다. 당대 최고의 문인 김동리가 심사위원이었다. 1차 예심에 합격하고 한 편을 더 제출해 합격하면 등단할 수 있었다. 그때 6·25 전쟁이 났다. 징집됐을 때 죽음의 공포보다 소설가로서의 미래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전쟁이 끝나고 군복을 벗었지만 소설을 쓰지 않았다. 잔인한 전쟁의 경험은 그저 핑계였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퇴직 후 전 재산을 날려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산과 명예, 사회인으로서의 자격마저 상실했다. 일흔이 됐을 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글을 쓰겠다’는 꿈을 찾았다. 모두가 이제 끝이라고 했을 때 그는 출판사 문을 두드리며 번역일을 찾았다. 그렇게 아흔의 나이까지 200여권의 책을 번역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도 여러 권 냈다.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포장된 길만이 길이 아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가시덤불이 발목을 덥고 뾰족한 가지들이 눈을 찌르지만, 한 번만 무사히 그 험한 골짜기를 내 발로 지나가면 두 번째부터는 그 골짜기도 길이 된다. 그것도 나만의 길이 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