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과 2016년 최상규(56) 선한울타리 대표는 20대 초반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윤태빈(가명)씨, 박혜준(가명)씨와 결연을 하고 멘티·멘토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멘티들은 명절 때마다 최 대표 집을 방문해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직업적으로 자립한 윤씨는 교제 중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일 경기도 성남 샘물교회에서 만난 최 대표는 “멘티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두 번 정도 온 것 같다. 상견례를 할 때 제가 (부모 자격으로) 참석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교회 보육원 사역 계기로 시작
최 대표가 출석 중인 샘물교회(채경락 목사)는 2008년 경북 김천 임마누엘영육아원과 인연을 맺고 사역을 시작했다. 성도들은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초대해 가정을 체험하도록 하는 등 관계를 이어갔다. 이 사역에 참여한 최 대표는 2014년 보육원을 퇴소한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보도를 접했다. 자립준비청년 용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저희가 만나는 아이들이 보육원을 퇴소한 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겠다는 걱정부터 앞섰죠. 임마누엘영아원을 퇴소한 청년 2명과 결연하면서 선한울타리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최 대표는 말씀을 묵상하던 중 ‘선한 사마리아인’이 떠올랐다고 한다. 최 대표는 동역자들과 자립준비청년의 ‘선한 울타리’가 되기로 다짐했다.
‘가정 밖 청년’까지 섬김 대상 확대
자립준비청년과 결연하는 사역을 하려면 무엇보다 신뢰감이 있어야 했다. 최 대표는 “기존에 관계를 맺은 보육원 퇴소생을 중심으로 한 명, 두 명 받다가 현재 70명 이상의 자립준비청년과 결연을 했다”고 밝혔다.
자립준비청년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선한울타리의 사역 대상은 그룹홈과 쉼터에서 퇴소했거나 탈북민 2세대 청년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 밖 청년’까지 확대됐다. 선한울타리 사역이 알려지자 지구촌교회 남서울은혜교회 등 24개 교회도 개교회에서 자립준비청년 사역을 시작했다. 이들 교회 성도들을 통해 멘토링을 받는 자립준비청년들은 200명이 넘는다.
멘티가 필요할 때 만날 수 있는 존재로
선한울타리 사역의 핵심은 멘토링이다. 가능하면 부부 멘토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며 자립준비청년과 같은 동성으로 멘토를 정한다. 결연을 하고 첫 1년간 주 1회 식사를 하며 교제하고 2년 차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멘티가 필요할 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는 멘토는 신앙생활, 자립 준비, 이성 교제 등의 분야에서 가족처럼 조언하고 안내한다.
최 대표는 “현장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들은 대부분 어른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며 “부모와 분리돼 들어온 보육원에서도 주 양육자인 사회복지사가 수차례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선한울타리는 멘토링에 기한을 두지 않는다. 기한 없는 멘토링에 멘토들은 시작할 때 망설일 수 있지만 교회 공동체가 함께하기에 개인의 부담은 줄어든다고 최 대표는 전했다. 그러면서 “자립준비청년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함께 보낸 시간이 쌓이니 어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전방위 지원
선한울타리는 샘물교회 성도들의 후원과 재단의 지원 사업을 통해 7개 숙소(울타리)를 운영한다.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임대료, 공과금관리비 등을 부담하지 않는다. 격주마다 울타리팀 봉사자들과 직접 장을 보고 요리, 청소 등의 생활 지도를 받는다. 취업하면 교회 인근에 있는 LH임대아파트나 전세 임대를 통해 안정된 주거 공간을 갖도록 행정 업무를 지원한다. 입주하는 아파트나 원룸에 필요한 가구, 가전 등도 지원한다.
교육 지원뿐 아니라 고액의 의료비가 발생하면 직접 지원 또는 외부 단체, 재단과 협력해 필요한 부분을 제공한다. 이처럼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에 사실상 전방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삼겹줄의 힘
최 대표는 자립준비청년 사역을 하려면 무엇보다 공동체의 힘이 필요하다고 봤다. 샘물교회의 경우 70명 이상의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150명가량의 봉사자가 헌신한다. 멘토링 외에도 장 보기, 사역 홍보, 취업 및 의료 지원, 법률 지원 등 다양한 부문에서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개인적으로 멘토링을 하면 3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 함께하는 봉사자들이 많을수록 그런 어려움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9년 전과 비교했을 때 자립준비청년 사역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최 대표는 “최근 자립준비청년에게 관심을 두고 사역을 시작한 교회와 성도들이 많아졌다. 그 속도가 빨라져 고무적”이라며 “제가 은퇴하기 전에 전국 100개 교회로 이 사역이 확대되길 소망한다. 자립준비청년 2명에서 시작한 선한울타리가 성장해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어느새 겨자나무가 된 것에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성남=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