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하면 ‘러시아’ 떠오르게 된 배경은

입력 2024-11-08 04:12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궁정 연회에 뿌리를 둔 발레는 프랑스에서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루이 14세가 세계 최초로 발레학교와 발레단을 만든 덕분이다. 발레 용어가 프랑스어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은 발레에 대해선 러시아를 먼저 떠올린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현재 공연되는 클래식 발레들이 바로 러시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발레가 여흥거리로 전락한 이후 러시아는 발레의 중심지가 됐다. 러시아 황실은 유럽의 발레 마스터들을 초청해 발레학교를 설립하고 무용수들을 길러냈다. 특히 19세기 후반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현 마린스키 극장)에서 활동하며 클래식 발레를 완성했다.

발레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러시아 덕분이다. 1909~29년 ‘발레 뤼스’(프랑스어로 러시아 발레단이란 뜻)가 전 세계에 발레 붐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발레 뤼스 출신 무용수나 안무가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이나 미국에 남아 발레단을 만들거나 발레 교실을 운영한 게 큰 역할을 했다.

최근 국내에서 발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발레 관련 서적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러시아 학자가 저술한 책은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무용사학자인 베라 미하일로브나 크라솝스카야가 쓴 ‘러시아 발레의 역사’는 눈에 띈다. 크라솝스카야는 안나 파블로바, 바츨라프 니진스키, 아그리피나 바가노바 등 발레사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를 집필했으며 러시아 발레에 대한 여러 연구서를 출간했다. 크라솝스카야의 책이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러시아 발레의 면모를 총 3부로 나눠 살펴본다. 제1부는 러시아 발레의 발생으로부터 19세기 중반까지를 다룬다. 러시아 발레가 갖는 민족적 독창성을 정의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각각 발레단이 결성된 과정을 고찰한다. 제2부는 19세기 후반 안무가 프티파와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중심으로 러시아 발레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유명 작품의 탄생과정을 통해 러시아 발레의 위상이 어떻게 높아졌는지 분석한다. 제3부에서는 20세기 초 러시아 발레계의 전통파와 개혁파의 대립을 통한 발전과 함께 발레 뤼스가 프랑스에서 처음 ‘러시아 시즌’이란 이름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고찰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