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여행] 황금빛 비밀의 숲에 찾아든 가을

입력 2024-11-07 04:06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인근 대자연 속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반세기 넘게 숨겨져 왔던 약 14만5000㎡ 규모의 숲은 최근 일반에 공개됐다.

에버랜드 인근 대자연 속에 반세기 넘게 숨겨져 왔던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숲이 처음 공개됐다.

에버랜드 정문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향수산 일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 군락지가 자리 잡고 있다. 약 14만5000㎡(4.4만 평) 부지에 은행나무만 약 3만 그루에 달하며, 밤나무·참나무·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식물 자원들과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은 1970년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황폐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고 국민들의 식량자급을 위해 국토개발의 시범장으로 경제조림단지를 구상한 게 출발점이었다. 당시 용인 지역과 함께 경주 보문단지, 추풍령 고개 근처, 문경새재 일대 등이 후보 지역에 올랐으나 척박해 조림에는 가장 적합하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찾아오기 쉬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용인 일대가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이후 에버랜드 일대에 약 400만평 부지를 확보해 식량증산과 소득효과가 큰 유실수(有實樹)와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수(長期樹)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양돈사업을 통해 나오는 퇴비로 메마른 토질을 개량해 나갔다. 특히 밤나무를 주종으로 한 유실수 단지에는 호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등을 심었다. 밤, 호두, 은행 등은 영양가가 높아 곡수(穀樹)로도 불렸다. 당시 쌀이 평당 137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에 비해 은행은 537원, 호두 498원, 살구 250원, 밤 245원으로 수익률도 높았다.

시련도 있었다. 1979년 초겨울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기록적인 한파가 용인 일대에 찾아와 밤, 복숭아, 호두 등 많은 과실수가 동해(凍害)를 입어 고사했다. 이듬해 봄 수만 그루의 고사목을 벌채하고 고사율이 가장 적으며 강인한 생존력을 보였던 은행나무를 더 심었다. 밤나무 고사 지역에 은행나무 3만주를 집중 식재해 현재의 숲을 형성하게 됐다.

지난 5일 찾은 숲은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 관리한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밀조밀 뿌리 내린 은행나무는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모습이다. 늦가을에 맞춰 숲 전체는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폭신한 황금빛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숲에는 약 5㎞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가 마련돼 있어 은행나무숲길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다.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명상장, 그리고 은행나무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황금빛 카펫처럼 펼쳐진 은행나무 숲속 길.

숲은 그동안 주로 삼성 신입사원 교육이나 기업 기념 행사, 고객 초청 이벤트 등 사적인 공간에서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 기업과 단체 중심으로 개방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가을 에버랜드는 일반 개인에게도 은행나무숲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비밀의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을 황금빛 은행나무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맞춰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시범 운영 중이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트레킹뿐 아니라 은행나무숲 속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전문 강사와 함께 명상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숲 치유도 포함된다. 여기에 인근 호암미술관 예술 체험도 가능해 휴식과 힐링, 그리고 문화 향유까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매주 금·토요일에 하루 3회 진행되고 회당 최대 30명까지만 참여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참가자 모집은 시작 2분 만에 전 회차가 마감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 은행나무숲길을 다녀간 고객들은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은행나무들 참 멋졌습니다. 꼭 한번 봐야 할 명소가 될 듯’ ‘해먹에 누워 온전히 자연의 소리를 느끼며 치유받는 느낌 너무 좋았어요’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를 실컷 보다 올 수 있는 곳’ ‘프라이빗하게 숲속에서 쉬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등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에버랜드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위해 향수산 일대에 잔디광장, 명상돔, 생태연못, 전망대 등을 갖춘 프라이빗 명품숲 ‘포레스트 캠프’를 조성해 2022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고, 은행나무숲길을 포함한 대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정비했다. 에버랜드의 다른 시설 이용 없이 오직 정원 체험만을 희망하는 고객들을 위한 전용 티켓인 ‘가든 패스’도 올해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뿐 아니라 포레스트캠프, 은행나무숲, 분재원, 스피드웨이, 호암미술관 등 같은 단지에 위치한 체험 인프라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듈화해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며 “국내 여가문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트렌드 속에서 오직 에버랜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