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친환경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이 대(對)미국 로비에 고삐를 죄고 있다.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연방정부, 의회 등의 정책 입안 과정에서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외쳐온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가장 우려하는 분위기다. 보조금 등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기업들에 약속했던 각종 혜택의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집권하면 전임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유지·확대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기반한 정책으로 한국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위험이 상존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으로 전기차 수요 침체를 버텨내고 있는 배터리 업계는 미국 정계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미국 상원 로비활동공개법 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대미 로비 집행 금액은 지난해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에서 올해 3분기 누적 18만 달러(약 2억5000만원)로 늘었다. 법무법인 율촌이 올해 LG에너지솔루션과 한화솔루션 대리 목적으로 쓴 24만 달러(약 3억3000만원)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삼성SDI는 지난 2022년 50만 달러(약 6억9000만원), 지난해 99만 달러(약 13억6000만원)로 로비 비용을 늘린 이후 올해 3분기까지 73만 달러(약 10억원)를 집행하며 현지 정치권 공략을 이어가는 중이다. SK그룹은 올해 미국 대관 업무를 통합한 SK아메리카스를 출범시켰고, 유정준 SK온 부회장이 이 회사의 초대 대표를 맡았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지난달 미국 대선 동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실무진을 미국에 파견했다.
최근 미국에 진출한 고려아연과 LS전선은 올해 처음으로 대미 로비에 나섰다. 올해 3분기까지 고려아연은 75만 달러(약 10억3000만원), LS전선은 23만 달러(약 3억2000만원)를 지출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시장에 안착하려면 친환경 사업 관련 보조금이 절실하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광물 재활용 및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 중이고 LS전선은 해상풍력 프로젝트 관련 초고압 해저케이블 공장을 미국에 지을 예정이다.
태양광 업계도 미국 정치권 공략이 활발하다. 미국에 태양광 통합 밸류체인을 구축 중인 한화큐셀은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을 로비스트로 전격 영입했다. 지난 9월에는 테슬라 로비스트 출신 조 멘델슨을 미국 대관 책임자로 데려왔다. 한화큐셀은 올해 3분기까지 로비 비용으로 451만 달러(약 62억1000만원)를 지출하며 지난해 227만 달러(약 31억3000만원)를 이미 넘겼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미국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이를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윤준식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