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살해 후 자살’에 희생된 아동 중 70% 정도는 9세 이하 아동으로 분석됐다. ‘같이 죽자’는 부모 결정에 동의한 적도,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도 없던 어린아이들이 비극의 희생자가 됐다. 대부분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집에서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는 5일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2014~2023년 ‘자녀’ ‘살해’ ‘자살’로 교차 검색된 판결문 가운데 ‘살해 후 자살’ 범죄 유형에 해당하는 사건 102건을 찾아 분석했다. 피해 아동에는 부모의 살해로 사망한 경우,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경우, 다른 형제자매가 부모 손에 피해를 당하는 상황을 목격한 경우 등을 포함했다.
147명의 피해 아동 가운데 4~9세 아동이 77명으로 절반 정도로 조사됐다. 7세가 15명(10.2%)으로 가장 많았다. 4세와 8세 각각 14명(9.5%), 9세 13명, 5세 11명, 6세 10명이 피해를 봤다. 아동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고, 부모 도움이 있어야 하는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다. 0세부터 9세 이하 아동으로 넓히면 전체 피해 아동 중 73.5%에 달했다.
이는 가해 부모의 연령대와도 연관이 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해 부모의 주 연령대인 30, 40대는 자녀 양육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이 과정에서 부부간 불화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면서 “우울증 등 정신 질환, 경제적 곤란, 가정불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영유아기 아동의 경우 주변에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어 살해 후 자살 범죄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피해 아동 중에는 생후 13일 만에 엄마 손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외국 국적의 산모는 출산 직후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아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았다. 입원 치료가 필요했지만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약물 처방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남편에게 “아내를 혼자 두지 말고 살펴보라”고 말할 정도로 위험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내는 바로 그날 아이를 살해했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범행이 일어난 장소를 분석한 결과 77건(75.5%)이 가족이 거주하던 집에서 발생했다. 이어 차량 15건(14.7%), 숙박시설 6건(5.9%) 순으로 나타났다. 집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사망으로 이어지는 등 피해 정도도 심각하다.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영유아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데 취약하고, 집 안에만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눈에 띄지 않아 피해가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