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이남 곳곳 복음 심은 美 선교사들 발자취 생생

입력 2024-11-06 03:02 수정 2024-11-06 11:22
1909년 미국 북장로회 한국선교부가 평양 새뮤얼 모펫의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초기 내한 선교사는 삼각구도로 이뤄졌다. 특정 지역의 집중화를 막고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서다. 미 북장로회 호러스 언더우드와 새뮤얼 모펫, 제임스 아담스와 윌리엄 베어드는 수도권과 북부지방, 영남을 맡았다. 미 북감리회 헨리 아펜젤러와 윌리엄 스크랜턴은 수도권 강원 충청지방에 배정됐다. 미 남장로회 윌리엄 전킨과 윌리엄 레이놀즈, 유진 벨 등은 호남, 충청지방을 담당했다.

미지의 땅을 복음화하겠다는 열망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선교사들이 겪은 고통과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아원을 세우면 아이들 심장을 팔아먹는다는 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어린 자식과 아내를 풍토병으로 잃으면서도 사명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신학대 도서관과 교단역사협회 등에 보관된 선교사들의 편지와 선교보고서에는 낯선 땅에서 느꼈을 이들의 고뇌와 번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신학교 코리아컬렉션에는 사진 찍기를 즐겼던 모펫 선교사의 자료를 비롯, 북장로회 한국 선교자료가 많이 보관돼 있다. 30㎝ 크기에 담은 직육면체 모양의 박스 6000개에 종교 관련 문서들이 빼곡이 쌓여 있다. 아카이브로도 보관 중이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100~130년 전 서울풍경, 의료·교육·선교활동 사진, 3·1독립운동과 일제의 폭압을 알린 선교보고서, 한글과 영문으로 발행한 독립신문 등이 전시돼 있다. 이튿날 방문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장로교역사협회에는 미국 장로교의 공식자료와 1885년부터 1942년까지 내한한 미 장로회 선교사들의 보고서와 사진 편지 등이 보관돼 있다. 지하 자료보관소에는 3만개의 박스에 자료가 보관돼 있는데 자료의 변질을 막기 위해 온도, 수분, 진동 변화가 없도록 관리하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1927년 미 남장로회 75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조선 선교지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장로교역사협회에 보관돼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유니온장로교신학교 도서관에도 호남선교의 문을 연 미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189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간 언더우드는 조선에 일꾼이 필요하다며 선교 지원을 호소하는 집회를 인도했다. 이듬해 가을 미 남장로회 전킨, 레이놀즈, 루이스 테이트 등 7인 선교사가 충청이남과 호남지방에 배정됐다. 이들은 가난하고 병든 자, 여성과 한센인 등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신행일치를 보여줬다. 입맛도 안 맞고 빈대도 많지만 여기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2세, 3세 등 대를 이어 한국땅에서 선교 사명을 이어간 선교사 가문도 적지 않다.

전킨은 세 아들을 모두 풍토병으로 잃었다. 클레멘트 오웬은 신학과 의학을 모두 겸비할 때 선교지에서 그리스도를 더욱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버지니아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버지니아 의대와 뉴욕대학원 병원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웬은 1898년 목포에 도착해 목포와 광주에 진료소를 열고 환자를 돌봤다. 환자들 중에는 한센인도 많았다. 오웬은 1909년 급성폐렴에 걸려 사망했고 이후 제중원의 로버트 윌슨과 윌리 포사이드가 뒤를 이어 한센인을 보살폈다. 자신들도 외면한 한센인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최흥종이 감동해 지금의 애양원이 시작됐다. 유진 벨 가문은 4대까지 선교사명을 이어갔다.

한국 기독교 기원을 올라가면 1883년 보빙사(견미사절단)를 도와서 개화와 선교의 문을 연 존 가우처 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민영익 등은 가우처 목사를 만나 한국 선교를 요청한다. 지난달 30일 방문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러블리 레인교회는 가우처 목사가 7년간 담임으로 시무하던 곳이다. 미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곳이다. 교회 지하에는 감리교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선교사들 흔적이 남아 있다. 가우처 목사 부부가 이집트와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 선교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과 모자도 전시돼 있다. 길 건너편에 가우처 목사가 살았던 집은 지금은 카페로 변신했다.

한국 기독교 140년 만에 한국은 세계 최대 선교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 기준 파송선교사는 한국이 174개국 2만3000명, 미국이 6만여명으로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이 해외선교에 더 열심이다.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이 거둔 열매다.

뉴저지·펜실베이니아·버지니아·메릴랜드=글·사진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