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글쭈글한 고난 속, 희망의 기도를 캔버스에

입력 2024-11-06 03:05
장승원 작가가 5일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 전시된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무릎을 꿇고 잔뜩 웅크린채 손을 모은 세 사람의 자태가 처량하다 못해 처절하다. 흐느끼듯 숙인 고개도, 절규하듯 들어 올린 얼굴에서도 가슴 치는 통곡이 느껴졌다. 이 모습이 더 극적으로 보인 건 닥종이를 구겨 거칠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5일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서 만난 장승원(61) 작가는 대표작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삶 가운데 겪는 고난은 매끈하고 평평하지 않다. 우글쭈글한 고통 중에도 한 줄기 소망의 빛을 품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장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기도’다. 크리스천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지만 그 단어를 40여년간 캔버스에 수놓기까지는 성경 속 광야 생활과도 같은 역경이 있었다.

장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통성 기도'. 신석현 포토그래퍼

“1981년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찬란한 청춘이 펼쳐질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머니의 병환과 아버지에게 들이닥친 뇌졸중까지…. 암흑 같은 20, 30대를 보내야 했지요.”

그의 삶을 붙든 게 기도였다. 장 작가는 “하나님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한 조각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극한의 고난이 낳은 간절한 기도가 슬픔을 기쁨으로, 눈물을 감사로 변하게 한 동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광장시장에서 한복 포목점을 하시던 어머니와 유년시절에 행복하게 나비며 꽃이며 오려붙이던 게 떠올라 스케치해 둔 그림에 종이 콜라주 기법을 접목해 봤는데 이게 지금의 입체감 있는 작품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들은 떠오르는 형상을 스케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닥종이 위에 혼합재료를 더해 구기고 으깬 뒤 풀로 형태를 잡아 붙이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여기에 드로잉이 더해지며 뒤틀리고 우글쭈글한 질감을 통해 고난의 상처를 표현해 낸다.

최근 작품에는 고통과 탄식의 과정을 지난 뒤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표현돼 있다. 장 작가는 “갤러리를 찾는 분마다 서로 다른 작품 앞에서 뭉클함을 느끼는데 이는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의 과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며 “청년 관객의 경우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신음하듯 웅크려 있는 작품 앞에 발길을 멈춘다”고 전했다. 장 작가의 작품 40여점을 만날 수 있는 9번째 개인전 ‘기도하는 사람들’은 15일까지 이어진다. 그는 내년 3월 ‘하나님이 주시는 쉼과 안식’을 주제로 한 수채화 작품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