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점 고신용자도 대출 빡빡… 중저신용자 ‘말해 뭐해’

입력 2024-11-05 00:02
게티이미지뱅크

금융권이 갈수록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점수 900점(1000점 만점)을 넘는 고신용자도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영향으로, 저신용자들의 ‘대출 절벽’ 역시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신용대출(신규취급액 기준) 평균 취급 신용점수는 933.8점이었다. 지난해 9월(924.4점)과 비교하면 9.4점 올랐다. 시중은행이 일제히 대출을 조인 지난 8월에는 평균 취급 신용점수가 938.2점까지 치솟았다.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 KCB(코리아크레딧뷰로) 기준 1등급은 942점 이상, 2등급은 891~941점, 3등급은 832~890점 등으로 구분된다. 통상 3등급까지 고신용자로 구분하지만 현실은 2등급마저 1금융권 신용대출을 받기 어렵다. 지방은행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5개 지방은행(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의 가계신용대출 평균 취급 신용점수는 지난 9월 873.4점으로, 1년 전(846.8점)과 비교해 26.6점 올랐다.

최근 1년간 평균 신용점수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KB국민은행이다. 지난해 10월 947점에서 올해 10월 959점으로 12점 상승했다. 신한·하나은행은 10점, 우리은행은 8점, NH농협은행은 7점 올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금리 수준이 올라가면서 소득이 높은 고신용자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방침에 호응한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금리를 올리고, 비대면 경로를 통한 신용대출 판매도 중단하는 등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날도 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비대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출 갈아타기 상품도 이에 포함된다. 여기에 금융 소비자 신용점수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이 올해 신용대출 평균 취급 점수를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용도가 낮은 중·저신용자의 1금융권 대출은 언감생심이다. 올해 3분기 저축은행업권의 민간중금리대출 잔액은 2조482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4546억원)보다 70.7% 증가했다. 민간중금리대출은 신용 하위 50% 이하 중·저신용자를 위한 제도다. 시중은행이 대출을 옥죄며 저축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민간중금리 대출을 내준 저축은행도 신용점수 500점대 구간에 대출을 내준 곳은 13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18곳)보다 5곳 줄었다.

중·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등 제도권 밖으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금융권에 고신용자들이 몰리면서 중·저신용 차주들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