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결정하면서 중도층 공략 노선을 더욱 분명히 했다. 금투세 문제는 당내에서 ‘조세 정의’를 외치는 원칙론과 ‘중도 외연 확장’을 주장하는 현실론이 팽팽히 부딪혀 온 사안이었는데, 이 대표는 장고 끝에 실용을 택했다.
이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참 고민이 많았다”면서 금투세 폐지 방침을 밝혔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공론화한 이후 약 10개월 만에 내린 결론이다. 그간 이 대표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왔고, 그 사이 당내에서는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국정감사와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부득이하게 의사 결정이 늦어졌다”며 “이 대표도 발표 직전까지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대표 연임과 함께 사실상 차기 대권 준비에 들어간 이 대표는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을 앞세워 중도 외연 확장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21대 국회 막바지였던 지난 5월에는 국민연금 개혁 문제를 두고 “꼭 해야 할 일인데 시간은 없으니 불가피하게 우리 당이 다 양보하겠다”며 여당 안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태도도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 참석해 글로벌 AI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차담을 하는 등 신성장 전략 구상에도 집중하고 있다.
다만 이 대표도 금투세 폐지 관련 진보 진영의 비판을 의식한 듯 “특히 원칙과 가치를 저버렸다고 하는 개혁진보 진영의 비난, 비판 저희가 아프게 받아들인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앞으로 더 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주주 충실의무’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 등 증시 선진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은 “깊은 고민도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본 결정”이라며 “심각한 입법 후퇴이자 정치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윤석열정부의 부자 감세에 협력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는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올해 세법 개정안에 금투세를 폐지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포함한 상태다. 정부는 금투세 폐지와 별개로 증권거래세 인하 조치는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주식을 사고팔 때 내는 증권거래세율은 지난해 0.20%에서 올해 0.18%, 내년 0.15%로 단계적 인하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세수 펑크’ 상황에서 금투세 도입과 패키지로 추진됐던 증권거래세율 인하가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김판 기자, 세종=양민철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