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대독’ 시정연설… 尹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어”

입력 2024-11-05 00:21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모습을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켜보고 있다. 이병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연설 내용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대독으로 전달됐다. 윤 대통령은 국회를 찾지 않았다. 총리가 대통령 대신 시정연설을 낭독한 건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정홍원 총리 이후 11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 이어 시정연설마저 불참하자 야당은 “대통령의 국회 무시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한 총리가 대독한 202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의 번영을 계속 이어가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사회의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개혁은 국가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역설했다. 약 28분간의 연설에서 제일 많이 등장한 단어는 ‘개혁’(19회)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반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내년 예산이 적기에 집행돼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법정시한 내에 확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시정연설 당시 국회의원들 앞에서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했던 것과 온도차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다섯 차례나 언급한 ‘협조’는 올해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이날 연설은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오는 10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그러나 ‘국정 지지율 20%대 붕괴’나 ‘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 정국 현안과 관련한 발언은 없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부산 금정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 대통령의 불참에 대해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당 측에서 “민주당 원내대표냐”는 야유가 나오자 우 의장은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국민께 보고할 책무가 있다”고 응수했다.

야당 반응은 더욱 냉랭했다. 한 총리는 여당 측 박수만 세 차례 받은 채 시정연설 대독을 마쳤다. 야당 의원들은 박수 대신 “대통령 오라고 하세요” “서면으로 하시라” 등의 야유를 날렸다. 한 총리가 고용률 역대 최고·실업률 역대 최저치 기록, 마약범죄 근절 예산 증액을 밝힌 대목에서는 야당 측에서 “상황 좀 파악하라” “그만 내려오라” 등의 고성이 쏟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정연설은) ‘서비스’가 아니라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날을 세웠다.

구자창 송경모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