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1심 선고를 앞두고 법원 밖에서 여론전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선 어떤 판결이 나오든 사법부를 향한 진영 공세가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 원로들은 최근 주요 판결에 대해 판사 개인을 압박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이 현행 법체계를 존중하고 판결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3일 “법원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양심이자 최후의 보루”라며 “(이 대표 선고 후에도) 어떤 결론이든 이해관계를 떠나 판결 자체는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법원을 비판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가 연루된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민주당에선 “저런 검사에 요런 판사”라며 판사 개인을 비판하는 말이 나왔다. 반대로 지난해 9월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당시 국민의힘에선 “사법부가 정치 편향적 일부 판사들에 의해 오염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이 대표 선고를 앞두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무죄’라는 손팻말을 들고 릴레이 서명운동에 나섰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을 비평할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세를 과시하고 재판부에 압력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원로 법조인들은 판결 전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거나 판결을 부정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안이 있는 비판이 아니라 불리한 재판 결과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 사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사법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총장 출신 한 원로 법조인은 “판결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을 희화화하는 것”이라며 “오로지 정치만 있고 다른 작용은 없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특히 일부 강성 지지층의 ‘판사 탄핵운동’ 등이 이런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법원과 판사를 향한 부당한 압력은 사회 질서를 해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판결을 이유로 판사 탄핵을 언급·시도할 경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원로들은 법원이 ‘3심제’를 보장하는 만큼 판결 불복도 법체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현직 고위 법관은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3심까지 다퉈 판가름이 나면 승복해야 한다는 게 헌법이 정한 시스템”이라며 “판결을 편향된 시각으로 오독하지 않고 합리적 근거를 갖춰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우리 사회에 어른이 될 만한 분들이 앞장서서 법원을 향한 과열된 공격이 잘못됐다고 얘기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정치인들이 먼저 대오각성해 법원과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법원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전 회장은 “대법원장이 ‘법원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이고, 결과에 대해 어떤 비난이 있어선 안 된다’고 용기 있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의 관심이 많은 사건인 만큼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으로 보고 법원을 믿고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법부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해 법에 따라 판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 보수와 진보의 편향성을 뛰어넘는 합리적 판결을 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