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레기(판사+쓰레기) 넌 이제 끝이다.’ 지난달 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이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재판을 담당하는 A부장판사 탄핵 청원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A부장은 지난 6월 7일 대북송금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대표 사건도 A부장이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탄핵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다른 온라인 글엔 A부장의 사진과 함께 근무 이력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지지자들에 따르면 탄핵 청원은 지난달 말 1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고 한다.
판사 좌표 찍기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선고할 B부장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고, 위증교사 혐의 재판을 맡은 C부장판사는 고향이 호남’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9월 이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한 보수단체는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사진과 비방이 담긴 현수막을 서울 강남역 등에 걸기도 했다.
원하는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관을 직접 타깃으로 공격하는 현상은 정치인 사건뿐만 아니라 찬반이 명확하게 갈리는 현안 사건에서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5월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2심을 기각·각하한 부장판사에 대해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공개하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한 고위 법관은 “특정 판사를 거명하며 압박하는 건 사법부 독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침해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