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최근 한국인에 대한 단기 비자 면제 조치를 발표했다. 오는 8일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비즈니스, 관광 등으로 중국을 방문할 경우 15일간 비자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통상 중국 정부의 비자 면제는 연말에 연장되는 경우가 많아 15일 무비자 입국은 상시 조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중국에 비자 면제를 먼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전격적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겼다. 미국 대선이 코앞이고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동맹이 강화된 가운데 중국이 한국 정부에 일종의 외교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중국이 한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결정한 건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과거 한국인이 중국을 거쳐 제3국으로 향할 때 최대 144시간 무비자 혜택을 준 적은 있다. 이번 건은 본토를 방문하는 한국인 전원이 대상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양국 교류와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무비자 방문 필요성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하게 마련인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불법 체류 중인 중국인이 1만명을 넘는 등 부작용이 많아 우리 정부가 적극성을 띠진 않았다.
윤석열정부는 한·미·일 동맹에 역점을 둬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지난해 월별 대중 수출이 20년 만에 미국에 1위 자리를 빼앗기는 등 경제적 끈끈함도 옅어졌다. 최근 중국이 반간첩법을 적용해 한국인을 처음 구속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국 갈등 고조가 우려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선제적 무비자 조치가 나왔으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밀 만큼 다급하다는 의미다. 미국 대선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중국 견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까지 했다. 외교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서둘러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불만도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중국의 변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민 정서상 방한 중국인에게 당장 무비자를 허용하기엔 시기상조이나 중국 조치를 상호 소통과 교감을 높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동맹은 동맹대로 유지하되 경제적 실리를 찾는 게 국익이다. 그런 점에서 최대 원자재 공급 및 무역 시장인 중국을 마냥 외면할 순 없는 게 현실이다. 한반도 정세 안정 차원에서라도 북한의 폭주를 저지할 거의 유일한 영향력을 갖춘 중국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이를 통해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한국 외교의 역량을 보여줄 때다.